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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Sep 05. 2023

POD 출판이란 무엇인가

POD로 책을 내시려고요?



언젠가 다독가로 알려진 지인 한분이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가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무슨 책이 주문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배송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지인은 결국 책주문을 취소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지인이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한 건 POD 출판으로 유명한 부크크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온라인으로 알게 된 누군가가 시집을 내었다기에 주문했다가 이런 불편한 일을 마주한 것이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는 부크크 같은 POD 출판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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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 (Printed On Demand: 고객 요청에 의한 주문형 인쇄)

POD 상품은 취소, 반품 불가합니다. 품절/절판 도서의 디지털 파일을 이용해 주문 시 종이책으로 소량 제작하므로, 원 도서와 재질, 제본, 표지 색상 등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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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라고 하면 응당, 취소와 환불에서 자유로워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이 POD 출판물은 그렇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동네 슈퍼에서 껌 한 통을 사더라도 취소와 환불이 가능한데, 책이라고 팔고 있는 물건이 취소와 환불이 어려운 것은, POD 출판이라는 게 말 그대로 주문과 함께 하나하나 책을 소량으로 찍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겠지. 기계는 돌아간다, 이 기계는 일단 작동하면 멈추는 법을 몰라요, 돌아가라 기계여...


작가 지망생들이 각자 생각하는 '작가'와 '책'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생각해 온 책이라고 하면 '읽어주는 이가 있어야 할 정도로' 괜찮게 만들어지는 물건이었다. 읽어주는 이가 없는 책을,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책을 내는 사람을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 머릿속에서 자비출판이나 POD 출판 같은 방식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기획출판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혹여나 아직까지도 자비출판, POD 출판, 기획출판 등의 차이를 모르고서 글을 쓰고 책을 준비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쓰던 글을 멈추고서, 출판의 종류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많은 이들이 출판의 꽃은 '기획출판'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돈 천만 원 받는 책 쓰기 클래스 강사마저도 책은 당연히 기획출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긴, 돈을 천만 원이나 받으면서 책 쓰기 수업을 하는 이라면 수강생의 최종 목표를 기획출판에 두는 게 당연한 거겠지만.


하지만 기획출판은 그만큼 어려움이 따른다. 내가 유명인이 아니라서, 내가 신인이라서,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내가 트렌드세터가 아니라서. 내가 기획출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두룩하지만 출판사에서 기획출판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글이 상품으로써 가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치를 따지는 중요 척도 중 하나로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있을 테고.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내면서 주변에서 많은 '작가 지망생'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 중 기획출판을 꿈꾸던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중도 포기를 하고서, 자비출판이나 POD 출판으로 눈을 돌리는 모습도 봐왔다. 기획출판의 어려움을 알기에 나는 그런 중도 포기의 선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든 책이 삶에서 우선일 수는 없으니까.


다만 POD 등으로 책을 내었을 때는, 기획출판 못지않게 잘 팔릴 거라는 꿈은 포기하고서 그저 자기만족으로 그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만큼 POD 책의 판매는 어렵다. 우리는 지금 기획출판으로 나온 책 대부분도 1,000부 판매를 못 이루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POD로 나오는 책이 과연 몇 명에게서나 읽힐 수 있을까. 그것도 주문버튼을 누르면 내 손에 쥐이기까지 기본 일주일에서 2주 가까이 걸리는 책을.


물론 POD 책이 늘 망하는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적인 히트작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POD 방식을 통해 최초 출간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얼마 전에는 기성 소설가가 출판사에서 글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POD 출판을 하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정말 의외의 상황이고,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는 '새로 나온 책'을 두 가지 카테고리로 안내한다. 하나는 '주목할만한 새 책'이고 하나는 '새 책 모두 보기'이다. 전자는 그야말로 유명 작가들의, 기획출판물 등이 주를 이룬다. 후자는 그 나머지 책들인데, 이곳에는 기획출판물과 자비출판물, POD 출판물들이 뒤섞여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 '새 책 모두 보기'에서 부크크 등의 POD 출판물이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약간의 비웃음과 짜증이 올라온다. 경제용어중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인터넷서점에서 이런 신간을 체크하며 악서가 양서를 구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요즘에는 신간을 체크하면서 '주목할만한 새 책' 위주로만 보는 편이다.


기획출판이든 POD 출판이든 어쩌면 글 쓰는 이들의 역량은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POD 출판으로 책을 낸 사람의 글솜씨가 더 좋거나 책의 내용이 더 좋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기획출판과 POD 출판의 가장 큰 차이는 글 쓰는 이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작업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POD 출판물엔 일반 책에서 볼 수 있는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출간 후 마케터의 역할을 해줄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니 교정교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그런 책에 신뢰를 갖기란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POD로 에세이를 낸 사람이 스스로를 수필가라고 칭하거나, 소설을 낸 사람이 소설가라고 칭한다면 나는 그들을 존중하기보다는 뻔뻔스러움을 먼저 읽어내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그들 대부분은 별다른 노력 없이 너무나 쉬운 방법으로 '출간 작가'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이가 부크크 등의 POD 출판을 알아본다면, 만약 그게 자기만족으로 그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지하게 '작가'를 지망하는 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기획출판을 목표로 삼으라고 할 것이다.


"너는 네 책이 주문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도착하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일 거 같아?"라고, 말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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