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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Sep 04. 2023

독자는 브런치 밖에 있다

커뮤니티의 친목질이란 무엇인가



이런저런 커뮤니티를 경험하다 보면 폐쇄적인 정책을 내세운 곳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친목질'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인데, 서로의 이름(ID나 대화명)을 못 부르게 한다든가, 아예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이름을 주어 익명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친목질은 왜 커뮤니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인가. 그것은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하다 보면 곧 잘 '패거리'를 구성한다는 데에 있다. 패거리를 이루게 되면 자연스레 다른 패거리와는 이견이 생기고, 그 이견은 곧 분쟁을 낳고, 그 분쟁은 결국 커뮤니티를 지저분하게 만든다.


나는 이런 극단적인 정책이 인간미는 없을지라도 커뮤니티를 지켜내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오래전 PC통신을 하던 시절부터 친목질로 패거리를 이루고 편이 갈리면서 서서히 망해가는 커뮤니티를 많이 봐오기도 했고.



그럼 글을 쓰는 이들의 플랫폼(커뮤니티)에서는 어떨까. 가장 대표적으로 브런치 같은 곳. 브런치에서는 심사를 통해 플랫폼에 글을 쓸 수 있는 이들을 선별하고서, '작가'라는 호칭을 안겨주지만, 궁극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결국 책 출간이나,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한 '작가 지망생'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작가'라는 호칭은 브런치 내에서만 통용될 뿐, 브런치 밖에서 "제가 브런치 작가입니다."라고 한다면, 상대방은 그게 뭐냐는 표정을 짓지 않을까.


어쨌든 브런치 역시 커뮤니티이다 보니 친목질은 이루어진다. 문제는 일방적인 소통에 있다. 글을 쓴다는 일은 '내 글 구려병'과 '작가병'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슈퍼 발란스 게임이라 그 사이를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일방적인 소통이 과해진다면 결국에 글을 쓰는 이들은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글 쓰는 이들의 친목질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자화자찬'에 있다. 서로의 글을 칭찬하면서 그들은 '내 글 구려병'에서 벗어나 자기 글에 자신감을 얻게 되는 긍정의 효과도 보겠지만, 자화자찬에 익숙해지다 보면 결국은 시야가 좁아지고 자기들만이 보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게 된다.


그러니 나는 이런 친목질이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패거리를 이룬 이들은 서로 비판하는 법을 잊고서, 달콤한 말만을 속삭이며 서로의 생각과 손가락을 썩게 만든다. 당장은 그 달콤함에 취해 기분은 좋겠지마는.


얼마 전 나는 브런치에서 한 유저를 비판(비난이라고 읽어도 좋다) 했던 일이 있다. 오랫동안 지켜봐 온 그의 행동이 몰상식하다고 여겨졌기에 부러 과하게 비아냥거리며 조롱에 가까운 투로 글을 쓰기도 했다. 나는 그가 내 글을 읽고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사과를 할 것이고, 내가 오해를 한 것이라면 반박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가장 쉽고, 간편한 '차단'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그가 쓰는 글에서는 오늘도 하하 호호하는 긍정의 댓글들이 난무한다.


이런 이들은 브런치 안에서의 사람들이 세상 전부인 줄 아는 듯하다. 잠깐의 비판을 피하고서는 자기만의 평화로운 세계를 지키려는 것 같다. 내가 비판했던 이는 수필가이면서, 칼럼도 쓰는 사람이란다. 칼럼을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이런저런 비판을 마주하게 되는데, 비판을 피하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그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좋은 칼럼니스트가 될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또 누군가는 "다들 브런치 정도에서나 글을 쓰고 있는 입장인데." 라며 타인을 비판하는 나를 탓하기도 했다. 이 말은 자기가 쓰는 글의 독자를 브런치 안에서만 상정해 두며, 스스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기를 택한 것 같다. 그분에겐 죄송하지만, 내 입장은 조금 다르기도 하고.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친목질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꼭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조회수가 터질 때가 있는데 그 조회의 대부분은 브런치 유저들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다음 메인 같은 포털 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진다. 책을 내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작가 지망생들이 작가가 되었을 때, 내 글과 책을 읽어줄 진짜 독자는 대개 플랫폼 밖에 있다. 책을 내고서 누군가 책에 대한 비판을 하는 독자가 생긴다면, 그때는 '차단' 버튼을 누르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이가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아무런 근거 없이 악플을 써댄다면 스트레스받지 말고 무시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근거를 대면서 비판을 한다면, 수용을 하든가 반박을 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생각과 글쓰기는 그런 비판을 수용하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발전할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과한 친목질로 자화자찬에 빠져 사느니, 차라리 외로움 속에서 글을 쓰는 게 더 나을 거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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