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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람이 왜 싫을까

by 이경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 미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냥 싫은 놈 뒤통수만 바라봐도 짜증이 밀려오던 시절. 돌아보면 그때가 사춘기였다. 철이 들고 나서는 이유 없이 누군가 미워하는 일은 사라졌다. 내가 뭐라고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는가. 사람들 다들 자기 앞가림하고서, 자기 역할 해내며 살아가는 거 같은데. 누구라도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사는 거 같은데. 그러니 나와는 좀 다르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보더라도 될 수 있으면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편이다.


다만 나도 사람인지라, 싫어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미운 감정이 생겨나곤 한다. 대체로 타인이 어떻게 살아가든 나에게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상관없다는 입장이지만, 나에게 피해를 끼치기 시작하면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워 보이는 것이다. 때로는 그 미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도 하고.


브런치를 하면서도 가끔씩 미운 사람들이 생겨난다. 글쓰기 플랫폼에 글 쓰면서 사람을 미워할 만한 일이 대체 뭐가 있을까. 나에게는 라이킷 빌런들이 그런 존재다. 내가 올리는 글에 좋아요 눌러주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곳이 다른 커뮤니티가 아닌 글쓰기 플랫폼이라 문제가 되는 것이다.


타인의 글을 읽지도 않고서, 좋아요만 누르고 사라지는 것은 '난 너의 글은 관심 없지만, 너는 내 글을 읽고서 관심을 보여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궁극적으로 글쓰기 플랫폼에서 진지하게 글을 쓰려는 이에겐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 아닌가. 자기의 글만, 자기의 시간만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생각하면 정말 이기적이고, 가식적이며, 얍삽하고, 파렴치하며, 부끄럽고, 쪽팔리는, 수준 이하의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라이킷 빌런들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얼마나 구독자가 많아 보이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그래, 글 쓰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 글이 읽히길 원하니까. 그 방식이 잘못됐더라도, 자기 글이 읽히고 싶다는 그 갈망을 모르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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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브런치의 라이킷 빌런 P를 언급했을 때, 나는 그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를 할 줄 알았다. 아무렴 자녀교육 관련 글을 쓰는 사람인데, 자식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려면, 사과를 할 줄 아는 인간이겠지. 근데 P는 사과는커녕 아예 나를 차단시켰다. P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뻔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P에 대한 미운 감정이 점점 커져갔다. P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르신들 가득한 무슨무슨 수필 협회에, 회비를 내고 정회원이 되는 그런 곳에 글을 보내고서, '등단'을 했다며 자칭 '수필가'라고 떠드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수백만 원의 비용을 내고서 출판 에이전시에 들어가, 그런 곳에서 매주 내주는 과제를 수행해 가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글쓰기를 해오던 이가 '작가'라고 떠드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책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네이버 인물 등록하는 것도 맘에 안 들고. (그래.. 퍼스널브랜딩 해야지...)

영단어 하나를 타이핑하기 싫어서 복사붙여넣기 했는지 퇴고를 7번 넘게 했다면서 책 뒤표지부터 목차까지, 같은 단어에서 계속 틀려먹은 그 한심함도 맘에 안 들고. (나라면 편집자 붙잡고 면담했을 듯... 대체 어디를 퇴고한 거여...)

서점에 갔더니 자기 책 없다고 출판사에 물어봤다는 것도 나로서는 진짜 이해가 안 되고... (교보든 영풍이든 매장별 재고 숫자 보면 배본 됐지는 안 됐는지 금방 알 수 있는 건데, 왜 그런 걸로 출판사 담당자를 괴롭히는 거지? 진짜 자기 일만 중요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인 듯.)

책이 나오자마자 가족들 아이디로 인터넷서점에서 별 다섯 리뷰 남긴 것도 진짜 맘에 안 들고. (그게 홍보 글이지 리뷰인가...? 어디서 진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정말 글 쓰고 살면서, 이렇게 보기 드물게 행동 하나하나가 미워 보이는 사람은 처음인 듯. 물론 위의 행동들이 모두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내 주변에도 이름 없는 문예지에 글 보내고서 등단했다며 글 쓰는 분들 분명 계시고, 책 내자마자 네이버 인물 등록하시는 분들도 있다. 퇴고를 아무리 했어도 책에서 오탈자는 나오는 거고. 가족이 자발적으로 인터넷서점에 리뷰 써준 거면 그건 못된 짓이 아니라 몹시 훈훈한 거고.


무척이나 비논리적인 이야기이지만 똑같은 행동이라도, 미운 사람이 하면 더 미워 보이는 것일 뿐. 누군가를 싫어하고, 그 싫어하는 마음을 한 번씩 글로 쓰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게 아니라 마음이 더 불편하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P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냥 처음에 사과 한 번만 했으면 내가 이렇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정말 싫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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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 누군가 잘못을 지적하면, 차단이 아니라 사과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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