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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by 이경



검정치마의 세 번째 앨범 [TEAM BABY]의 첫 곡, <난 아니에요>를 좋아한다. 가사 한줄한줄이 와닿는 곡. 특히 좋아하는 몇 가지를 한번 이야기해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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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 꺼진 불 속 조용한 관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주세요.


조용한 관음과 비슷한 표현을 내 책 어딘가에도 쓴 적이 있는데. 나는 이 '조용한 관음'이라는 표현을 보고 있으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초반부 장면, 그러니까 소설의 주인공 시마무라가 달리는 열차의 차창을 통해 건너편 좌석의 요코를 바라보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김승옥이 쓴 <무진기행>의 윤희중이 무진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다른 이들의 대화를 엿듣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해. 무진에는 명물이 없지요, 안개가 있지요, 하는 뭐 그런 거. 그러고 보면 소설 <설국>과 <무진기행>은 많이도 닮아있는 소설 같기도 하고. 시마무라가 그러했듯, 윤희중이 그러했듯, 나 또한 이런 조용한 관음을 좋아해. 엘리베이터 유리를 통해, 카페 차창을 통해, 반대편이 비치는 것들을 마주할 때면,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그렇게 몰래몰래.


2. 옛 친구와는 가벼운 이별, 다음 주면 까먹을 2절, 믿지 않겠지만 별이 되긴 싫어요.


이경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누군가는 작가 지망생에게, 책을 내고 나면 꼭 네이버 인물 등록을 하라고 조언을 하기도 하던데. 나는 그 조언이 좀 징그러웠어. 실은 아주 많이. 나는 그거 평생 안 할 거 같아. 얼굴도 못생긴 게 무슨 인물 등록이야. 네이버에 내 이름을 쳤을 때 내 얼굴이 나온다면 그거 정말 못 봐줄 거 같아.

많은 이들이 글을 쓰고 책을 써서 입신양명하길 바라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방향은 조금씩 다른 거 같아. 책이라고 하면 소설만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만 읽는 이들이 있고. 그저 자신의 생각을 책을 통해 알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을 써서 퍼스널 브랜딩을 하고, 강연을 하고, 코칭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지. 책을 써서 우연찮게 돈을 버는 사람과 돈을 벌기 위해서 책을 쓰는 사람들. 누가 맞고 틀리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는 확실히 후자는 좀 징그러운 거 같아.

이경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정말 많아. 네이버에 '이경 작가'를 치면, POD로 판매처가 달랑 한 곳뿐인 책을 낸 사람도 작가라고 인물 등록을 해놨더라고. 사람은 이렇게 부지런해야 성공할 수 있는 걸까.

책을 쓸 때면, 책의 몇 페이지 몇 째 줄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까지도 생생하지만, 책을 내고서 두 달 정도가 지나면 나는 책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거짓말처럼 까먹고 말지. 책이 잘 팔리면 좋기야 하겠지만, 다음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망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책을 써서 별이 되고 싶진 않은 것 같아.


3. 난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기 싫은걸요. 그대 알잖아요 우린 저들과는 너무 다른 것을. 난 배고프고 절박한 그런 예술가 아니에요.


처음에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을 쓰는데 생각만큼 구독자가 늘지 않는 거야. 첫 책을 내기도 전이었지. 그때 내가 자주 가는 한 커뮤니티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 저는 글 쓰는 작가 지망생인데요. 책을 준비하면서 브런치에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는데 구독자가 너무 안 모이네요. 그랬더니 누군가 댓글을 달아주더라고. 글을 잘 쓰세요. 그럼 구독자는 따라올 겁니다.

처음 그 댓글을 보고서는 얼굴이 벌게지고 부끄럽더라고. 재수 없는 놈. 근데 딱히 반박하긴 어렵더라고. 그게 맞는 말 같았으니까. 글을 잘 쓰면 구독자는 따라오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고 책을 다섯 낸 내가 글을 잘 쓰는지 못쓰는지는 모르겠는데 여전히 구독자는 생각만큼 많이 모이는 것 같진 않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글쓰기 플랫폼에서의 구독자란 글을 잘 쓰는 것과는 무관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

이곳에서는 웃으면서 영업하며 짧은 시간에 구독자를 늘리려는 사람들이 보이지. 가끔 말하는 라이킷빌런 같은 사람들. 그 치들은 착각을 하는 것 같아. 구독자가 내 글을 읽어줄 거란 착각. 구독자의 숫자가 늘어나면, 내 글이, 내 책이 많이 팔릴 거라는 착각. 그렇게 웃으며 영업하고 빈말하는,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 사방에 천지야.

내가 볼 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개가 작가 지망생이거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그런데 서로가 서로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면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 서로서로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가며, 서로를 응원해 주고 위안을 삼는. 물론 정말 글을 잘 써서 찐구독자가 많이 따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야.

글쓰기 플랫폼은 읽으려는 사람보다 쓰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작가와 독자의 관계가 아닌, '문우'가 늘어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있잖아. 정말 글을 쓰려는 사람에겐, 문우가 아닌 진짜 독자가 필요한 게 아닐까. 나는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고 싶지 않아. 나는 배고프고 절박한, 그런 사람 아니에요.


나는 검정치마의 <난 아니에요>가 너무 좋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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