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오는 곡이 누가 부른 무슨 제목인지, 마지막으로 물었던 때가 까마득하다. 아마도 일산의 어느 술집에서, Joose라는 알앤비 그룹의 음악을 듣고서 바텐더에게 물었던 게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Joose의 앨범이 라이센스 되지 않은 탓에, 일본 아마존을 통해 앨범을 샀던 기억이 함께 떠오르고.
어릴 때는 좋아 죽겠는 음악이 나오면 자주 물어보고 했거든. 보통은 술집에서. 죄송한데요,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지금 나오는 이 곡 누가 부른 거예요, 제목은 뭐예요.
그보다 더 어릴 때 라디오를 듣다가 정말 좋은 곡을 듣고서, DJ가 분명 가수와 곡 제목을 불러주었는데도 정확히 들리지 않을 때는 환장하겠더라구. 인터넷도 없던 시절. 지금처럼 선곡표를 확인할 수 있던 때도 아니었으니까. 나와 인연이 있는 곡이라면 언젠가 다시 들을 수 있겠지. 그렇게 놓치고 흘려버린 곡들이 얼마나 많을까.
근데 나이가 들고는 아무리 좋은 곡이 흘러나와도 이제 무슨 곡인지 묻지를 못하겠더라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돼버린 거지. 대신에 스마트폰이 생겼으니까. 흘러나오는 곡을 듣고 가사를 쳐보면 어떤 곡인지 알 수 있으니까. 근데 그게 확률이 좀 안 좋더라고. 그나마 우리말로 부른 곡이면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는데, 팝송이나 외국어로 부르는 곡은 거의 반포기 상태로, 아주 조그마한 희망으로 희미하게 들리는 단어들을 더듬더듬 찾아 인터넷창에 쳐보는 거지. 내 영어 듣기 평가 점수가 왜 엉망이었는지 실감이 나더라구.
몇 년 전 한 쇼핑몰의 아디다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듣고 너무 좋아서 가사를 쳐보았을 때 나온 곡은 정키의 <진심>이었어. 임세준이라는 보컬이 노래를 한 곡이었지. 마치 처용가가 떠오르는 내용이었어.
그렇게 스마트폰이 생기고서는 처음 듣는, 하지만 너무나 좋은 곡들을 듣게 되면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 하나하나를 쳐가면서 어떤 곡인지 확인을 하게 됐지. 여전히 우리말이 아닌 곡을 들을 때면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물론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흘러나오는 곡에 핸드폰을 대면, 누가 부른 어떤 곡인지 알려주는 어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근데 나는 이상하게 그 프로그램을 깔고 싶지가 않더라고. 아직 신문물을 거부하기엔 그래도 나름 젊은 축이 아닐까 싶은데도 그랬어.
알고 싶은 곡을 모르고 지나가면 한동안 너무 답답해할 걸 알면서도 그런 어플을 까는 건 또 싫더라고. 뭔가 디깅 하는 재미가 사라져서일까. 핸드폰 용량이 부족해서? 정말 신문물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저씨가 되어버려서? 그냥 단순히 귀찮아서? 아니면, 옛 라디오에서 흘려버린 음악을 언젠가는 다시 듣고서, 이 곡은 나와 연이 닿았구나 하는 마음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그런 내가 오늘 드디어 음악 찾아주는 어플을 핸드폰에 깔았어.
어플 명은 Shazam인데, 샤잠이라고 부르는 걸까?...
이제 저 노래는 누가 부른 무슨 곡일까 하고서 애달파할 시간들은 사라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