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경일일> 1권을 완독 하고, 오늘 점심시간에 2권을 사러 영풍문고에 들렀다. 1권을 살 때만 해도 분명 신간 매대에 있던 책은 그 며칠 사이에 신간에서 밀려 입서가에 세워져 있었다.
책값은 일만일천 원이었고, 나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계산대로 갔다.
-영풍 회원이신가요.
-여기 적립카드, 내가 영풍 골드 멤바요, 내가 만원을 드릴 테니까 적립금에서 천 원만 써주시오.
-봉투 드릴까요.
-아니요.
-현금영수증 해드릴까요.
-아니요.
-영수증 드릴까요.
-아니,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빨리 책이나 주시오!
하는 대화를 상상했을 정도로 빨리 책이나 받아오고 싶었다. 2권의 사과 표지도 너무 좋네...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는 이전에 몇 번 보려고 시도했다가 모두 1권을 완독 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철콘 근크리트>, <죽도 사무라이> 같은 책들. 내가 보기엔 그림이 너무 산만하게 느껴졌달까.
<동경일일>의 경우 만화 편집자와 만화가들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여러 장면에서 감정이입하여 보게 된다. 만화의 주인공은 편집자이지만, 이건 작가(만화가)들을 위한 만화가 아닐까 싶고.
만화를 그리다가 편집자에게 재떨이를 던진 작가, 편집자에게 "내 똥오줌을 받아먹을 각오는 있어?"라고 묻는 작가, 자신의 원고를 기억해 준 편집자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작가, 타사의 편집자를 경계하는 담당 편집자의 모습에서 작가 인생을 논하는 작가, 험한 말로 작가를 윽박지르며 만화를 뽑아내는 편집자와 편집자의 요구 사항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작가.
작가에게 더 이상 당신의 작품에서 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집자와 작가의 원고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편집자. 비 오는 마감날 작가의 원고가 젖지 않기 위해 자신의 옷을 벗어 원고를 감싸는 편집자.
자의식 과잉의 작가와, 작가의 연재를 따낸 편집자에겐 시크하게 통화를 하고 끊고서 전화 밖에서 편집자를 향해 감사하다고 절을 올리는 작가.
편집자와 작가 사이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울컥하기도 하고, 나는 자연스레 내 글을 다듬어준 편집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첫 책을 냈을 때부터 책 다섯을 낸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내가 책을 쓰다니, 내가 사람들에게 '작가' 소리를 듣는 삶을 살다니, 하고서 여전히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최근 몇 년간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었다. 책을 쓰는 일에 더 이상 재미가 느껴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두어야지, 하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만큼 가슴이 설레진 않는다. 누가 멱살 잡고 글을 쓰라고 시키는 것도 아니니까.
그만할까. 사람들한테 민폐만 끼치는 것 같고 이제 그만둘까. 그런 마음이 일 때 <동경일일>을 보게 되어서 다행이다. 책에 등장하는 편집자와 작가들을 보면서, 조금 더 써봐도 좋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이 일이 그래도 제일 재밌으니까, 조금만 더 해봐도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