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던 존재들

by 이경





원도 <있었던 존재들>


경찰관 작가 원도의 네 번째 책. 원도의 책은 처음 읽지만 그가 그간 어떤 책을 냈는지는 알고 있었다. 독립출판으로 냈다가 개정판으로 나온 <경찰관속으로> 아무튼 시리즈 중 하나인 <아무튼, 언니> 로또 명당 탐방기라는 <농협 본점 앞에서 만나> 같은 책들을 보면서, 어쩐지 그가 조금 유쾌하고 가볍고 재미난 글을 쓰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편견 같은 게 있었달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혼자서 상상해 왔던 원도 작가의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글의 소재가 유머를 발휘하기 어려운 이야기인 점도 있겠지만.


책은 과학수사과 현장감식 업무를 보는 원도가 마주한 변사자들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한겨레 신문에 2년 넘도록 쓴 칼럼 20여 편에서 수정하고 덧대어 냈다고.


재미난 건 동음이의어(pun)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문장에서는 다시 한번 단어의 뜻을 곱씹어보게 되기도 한다. 같은 음절의 다른 뜻을 가진 단어들을 짚으면서 작가의 머릿속 생각을 따라 이리저리 유영하는 것 같다.


변사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체로 어둡고 가난하며 암울하다. 한 꼭지 한 꼭지 읽어나가는 게 힘이 들 정도. 소재 자체는 읽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작가 원도의 필력에 기인한다. 또한 이런저런 죽음을 눈앞에서 경험하는 공무원 경찰관의 애환을 읽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책은 원도 칼럼집으로 쓰여있지만, 르포타주에 에세이를 섞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책의 추천사를 쓴 은유 작가 앞에는 '르포 작가'라는 명칭이 붙어있기도 하다. 변사자들과 그들의 죽음을 살피는 경찰공무원들의 사정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 사회에서는 한때 공권력이 이상하게 쓰였던 시대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유독 경찰이나 군인에 대한 불신이 큰 것 같다. 지금은 돌아가신 외삼촌 한분은 어린 시절 지나가는 경찰을 보며 "저기 똥파리 지나간다."라는 농을 쳤다가 파출소에 끌려가기도 했단다.


어린 시절 들었던 외삼촌의 그런 일화 때문인지 나 역시 살면서 경찰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어쩐지 번거롭고 귀찮으며 수선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살면서 될 수 있으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들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이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현장감식을 하러 나가서 주차 문제가 가장 어렵다는 점. 경찰차가 보이면 사람들이 불안해하니 차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에피소드에서는 고구마와 감자를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근데 원도 작가의 이름은 왜 '원도'일까. 나는 혹시 태생이 '강원도'인 걸까 싶었는데 책을 보니 작가는 경상도 사람인 듯. 원도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으려나.


<있었던 존재들>은 몹시도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추천.


책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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