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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책 한 권쯤은 쓸 수 있다

by 이경




작가 지망생 시절 작가나 편집자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중 재밌게 읽었던 책 하나가 마스다미리의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입니다. 일본 인기 에세이스트이자 만화가인 마스다 미리의 첫 자전적 만화로 알려진 작품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요.



중학교 때 선생님이 이런 얘길 한 적 있습니다.

"누구라도 책 한 권쯤은 쓸 수 있다. 자기 인생을 쓰면 되니까 별것 아냐. 두 권째를 쓰는 사람이 프로인 거야."


느긋한작가생활.jpg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책을 쓴 마스다 미리도 그랬다지만 저는 이 말에 설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사람들 누구나 책 하나쯤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테지만, 프로라면 두 권째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책이란 자비출판이나 POD, 독립출판이 아닌 출판사에서 편집자와 함께 만드는 기획출판 책을 말합니다.


특히나 브런치에서는 책 출간을 꿈꾸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브런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책을 내는 많은 분들을 봐오면서 체감상 9할 정도는 두 번째 책을 쓰지 못하고 단권 작가에 그치는 것 같아요. 거기에는 아마 많은 이유가 있을 텐데요. 막상 책을 내봤더니 알 수 없는 허무함과 허탈감이 나를 덮쳐올 수도 있고, 들인 노력에 비해 그다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을 테고요. 아니면 아무리 다음 이야기를 써내려고 해도 정말 더 이상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절망감에 빠질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러다 보면 한때 작가가 되겠다던 뜨거운 열망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은 언제쯤 다시 데워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마스다 미리의 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작가를 지망하는 시절에, 첫 책을 목표로 둘 게 아니라 목표를 조금 상향 조절해서 두 번째, 세 번째의 책을 써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작가를 꿈꾸던 그 뜨거운 마음의 온기를 조금은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스스로, 그래 누구나 책 하나쯤은 쓸 수 있지, 두 번째부터가 진짜 작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야,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어쩌면 빠른 시일 안에 단권 작가에서 벗어나 정말 글쓰기 프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의식과잉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심을 갖는 게 중요하기도 하고요.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들뜨지 말 것이며, 나쁜 일이 있어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가끔 첫 책을 내는 분들을 보면 오랜 시간 과하게 들떠 있는 모습을 보는데요. 책 시장이 워낙에 좋지 않다 보니 들뜬 마음만큼이나 출간 후에는 실망감이 커져서 다음 책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 1년 넘게 매달린 책이 어렵사리 나오더라도 서점 신간 매대에서 2주도 못 버티고 서가로 가버린다면 누구라도 실망감이 크겠지만요...)


오랫동안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살고 싶다면, 첫 책을 출간하는 것에 너무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말고 묵묵히 다음 책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무렴 '작가'는 한때 글을 썼던 사람이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일 테니까요. 물론 첫 책이 100만 부 팔리면 다음 책은 안 쓰고 놀고먹어도 좋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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