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으로 혹은 간헐적으로 네 사람의 약쟁이(내과 선생님들...)를 만나 뵙고는 하는데 오늘은 드물게 약쟁이가 아닌 안과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고 왔다.
날이 갈수록 비문증이 심해지는 까닭이다. 점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어느새 선이 되어서는 두둥실 둥실. 특히나 요즘에는 맑은 날의 하늘을 올려다보기가 몹시 두려울 정도로 부유물이 많아져서 윤동주도 아닌데 하늘 앞에서 자꾸만 고개를 숙이게 된다.
비문증으로 인한 괴로움은 비단 맑은 하늘 아래에서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를 위해 백지의 한글 파일을 열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글쟁이에게 백지란 늘 그렇듯 공포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백지를 백지로 보이지 않게 하는 비문증이 더해지면서 이 공포와 괴로움은 배가 되었다.
나는 건강 염려증이 적잖이 있는 편인데 최근 몇 년간은 앞서 말한 약쟁이 선생님들에게 내가 염려하고 걱정했던 예상치보다 훨씬 좋지 못한 결과들을 받아 들으면서 한알 한알 복용약을 늘려가야만 했다.
게다가 진료를 앞둔 며칠 전에는 EBS <명의>에 안과 선생님이 나와서 진료 전 나의 심란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안과 선생님을 만나 뵙기 전 내가 들을 수 있는 최상의 병명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노화로 인한 노안 정도라면 그나마 선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시력 검사를 하고, 안압 검사를 하고, 산동액을 넣고서 정밀 망막 검사를 하고서 진료시간이 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은 오른쪽 눈은 괜찮은데 왼쪽 눈 12시 방향에 구멍(열공)이 있어서 레이저 시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EBS <명의>에서 망막 레이저 시술에 관한 내용이 나와서 대략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었다. 구멍 주변에 레이저를 조사하여 장막을 치듯 보호해 주는 시술. 그러니까 망막박리를 예방하는 차원의 레이저 시술이었다.
산동액을 포함하여 몇 번이나 안약을 넣고, 눈알에 마취를 하고, 길지 않은 시간 레이저 조사 후에 시술은 끝이 났다. 시술을 마치자, 시술을 한 왼쪽 눈은 다른 색의 빛을 잃어버린 듯 한동안은 핑크색으로만 보여서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색약자나 색맹자들은 이런 식으로 세상이 보이는 걸까 싶어지기도 하고.
다자이 오사무 소설 <인간실격>의 오바 요조가 그러하듯 나는 눈 건강에 대해, 특히나 실명에 대한 걱정과 공포가 심한 사람이다. 안과 진료 전 노안 정도라면 선방이겠거니 했는데, 레이저 시술이 더 나은 결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동안 미뤄두었던 안과 진료를 보았고, 의사 선생님은 1년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