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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그 각자의 사정

by 이경




내가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인생의 진리라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삶은 모두 제밥그릇 챙기기 싸움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입장과 사정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하물며 글쓰기라고 다를까.


내 글을 구독해 주고, 또 가끔은 댓글도 달아주었던 분이 어느 날부터 뜸해져서 찾아가 보면 무슨 일인지 구독이 풀려있다. 내 글이 재미없어졌거나, 더 이상 읽을 가치가 없다고 느껴져서이겠지. 어쩌면 내가 맞구독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고.

근데 그런 분들 중 일부는 자비출판을 하신 분들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가끔씩 자비출판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쓰다 보니, 그런 내 글을 읽고서 마음이 불편했던 게 아닐까 싶다. 으으 이경 저 자식이 내 삶을 부정하고 있다, 뭐 그런 생각에 괴로워하셨던 것은 아닐지.


전에도 한번 얘기했지만 나는 사람들이 자비출판을 하든, POD로 책을 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알고 지내는 주변인 중에서도 자비출판을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고. 자기 돈으로 자기가 돈 써서 책 내겠다는데 내가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있나. 인터넷서점에서 신간을 볼 때 자비출판이나 POD 출판물이 그득하면 좀 짜증이 나기도 하고, 나 같으면 자비출판이나 POD 출판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걸 타인에게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내 친한 지인이 그런 걸 하겠다고 하면 뜯어말리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모두 각자의 글쓰기 사정이 있을 테니까.


내가 정말 싫어하는 건 그렇게 돈을 들여 책을 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글을 쓰고자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들에 있다.

가령 자비출판임이 뻔한데도 우리는 자비출판을 하지 않습니다, 하면서 교묘하게 말로써 사람들을 속이며 저자에게 돈을 뜯어내는 출판사. 비슷한 부류로는 당신의 글이 좋습니다, 등단시켜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등단비와 책 구매비를 요구하는 싸구려 문예지도 있겠다. 돈 천만 원이 넘는 고액의 책쓰기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이며, 편집자 한 사람 설득하지 못한 글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려 드는 엉터리 글쓰기 강사 역시 내가 싫어하는 존재들이다. 내 눈에는 모두가 지나친 상술이자 기만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글을 쓰고, 책을 내고자 하는 마음이 커지다 보면 사람들은 내 눈앞에 있는 것이 빨간약인지 파란약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자비출판인지도 모르고서 자비출판을 하게 되고, 등단 장사인지도 모르고서 등단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작가가 되는 걸까 싶어서 수십수백수천만 원의 돈을 무능력한 이들에게 갖다 바치고 엉터리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며칠 전에는 누군가 나를 저격하는 듯한 글을 읽었다. 어떤 작가는 기획출판으로 책을 냈다면서, 자비출판을 한 사람들을 모욕하더라 하는 내용인데, 그냥 왠지 내 이야기 같더라고. 재미난 건 그 사람은 자비출판으로 책을 냈으면서, 등단 장사하는 문예지는 비판하고 있었다. 사실 내 기준에는 등단 장사하는 문예지나 자비출판이나 매한가지이며 큰 틀에서 볼 때 그 둘의 차이는 거의 없어 보이는데.


삶이란 제밥그릇 챙기기 싸움이고, 모두가 각자의 사정에 따라 생각한다.

빨간약을 삼키는 일은 늘 입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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