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누군가 유시민 작가에게 진정성을 운운했던 적이 있다. 그때 유시민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자기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본인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렇다. 누군가의 진정을 우린 어찌 판단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악인처럼 보였어도 실제로는 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법정 스님이 살아생전 출판사에 호통을 치며 인세를 재촉했을 때, 출판사 대표는 뭐 이렇게 돈을 밝히는 스님이 있나 생각했다지만, 실제로는 인세를 장학금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라고 알려져서야 출판사에서는 법정 스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의 기업인이자 기부왕인 척 피니 역시 자신의 자산 대부분을 기부했다는 진실이 알려지기 전에는 악독한 구두쇠라는 이유로 세간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서 단면만을 보아서는 그 진심을 알 수 없다. 나에겐 선한 사람이 누군가에겐 악할 수 있고, 나에게 악한 이가 다른 이에겐 선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기 위해선 그 사람의 단면이 아닌 여러 가지 모습을 접하며 나름의 판단을 할 수밖에.
글쓰기의 진정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하며, 악플을 달지 맙시다, 선플을 답시다, 온라인에서 누군가를 저격하지 맙시다, 하는 주장을 펼치는 작가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사실 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작가의 작품에 별점 테러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그 작가의 앞뒤 다른 말에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