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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주제 소재가 고민이신가요?

by 이경



*이건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취사 선택 하여 보시면 되겠습니다.



가끔 몇몇 글쓰기 강사들이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고민을 덜어주겠다며 주제나 소재를 알려주는 일이 있다. 예전에 브런치의 몇몇이 함께 모여 글을 쓰는 모임의 한 리더분께서도 '소재는 우리가 고민할 테니 작가님들은 글만 써주세요.'하기도 했던 것 같고.


나는 그 리더분의 소재 고민은 우리가 하겠다... 내용이 지나친 공치사 같아서 조금 재밌었던 기억이다. 내가 여러분들을 위해 이렇게나 많은 글쓰기 주제와 소재를 알려드리겠다아, 하는 글쓰기 강사 역시 마찬가지고.


이것이 오늘의 소재입니다, 하면서 단어 하나 알려주는 것이 뭐 그렇게 대수인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진짜 작가라면 어떤 단어를 접하더라도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거 같기도 하고,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는 조서 시간에 눈에 보이는 단어들로 범죄 시나리오를 꾸미며 공권력을 농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을 읽는 이들은 하루키도 카이저 소제도 아니다. 이제 막 글 쓰기에 재미를 붙이고, 탄력을 받아볼까 하는 사람들이겠지. 그런 사람들이라면 굳이 억지로 누군가 정해주는 소재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마치 주입식 교육으로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학생처럼, 타인이 정해주는 소재에 글을 쓰다가 흥미를 잃게 된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한 때의 그 뜨거웠던 열망이 다시는 피어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고종석 선생이 쓴 <고종석의 문장>을 보면, 작가 지망생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들을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그 단어들이 나 자신을 나타내고 보여주는 글감들이다. 그 단어들을 토대로 정말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나기 전에는 굳이 억지로 남들이 던져주는 몇몇 단어 쪼가리에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그 시간에 맞춤법 책을 한 번 보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2017년지 이런저런 글은 써왔지만 책을 내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살았다. 누군가 책을 써보라는 권유가 계기가 되어 음악 에세이 원고를 쓰지 시작했다. 당시 내 안에서는 '음악 에세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으므로. 불행히도 200여 군데가 넘는 출판사에 투고하였지만 원고는 책이 되지 못했다. 그러자 내 안에서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음악 이야기에서 작가 지망생의 이야기로 옮겨갔고, 그렇게 작가 지망생의 투고 경험기를 소설로 쓴 원고가 첫 책이 될 수 있었다.

(처음을 꿈꿨던 음악 에세이는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책이 되었다.)


물론 주어지는 글감에 무조건적인 글쓰기 연습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신문 기자들. 그들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각자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연예부 등으로 발령을 받아 하루하루 변하는 글감에 글을 써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무조건적인 글감에 글쓰기를 해보자 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신문 사설을 읽어봄으로써 시대의 흐름을 캐치해 보는 게 어떨까.


어떤 글쓰기 강사가, 여러분들 글쓰기 주제 소재가 고민이십니까, 라며 주절주절 떠든다면, 저 사람은 가르칠 게 얼마나 없으면 저런 이야기를 내뱉을까 믿어도 된다.

그들이 제안하는 주제와 소재에 나는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차라리 사전을 하나 사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나오는 단어를 보고 관련 이야기를 써보는 게 낫지 않을까? 사전엔 글쓰기 강사의 머리보다 훨씬 많은 단어들이 들어가 있는데?


만약 정말 나 스스로 할 이야기가 하나도 없고, 남이 알려주는 주제나 소재로 글을 써야 할 정도로 게으른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에는 글을 쓰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 누군가 억지로 글을 쓰라고 시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두고서 적절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있다. 출판사 편집자 같은 분들. 예를 들어 나는 꼭 회사 때려치운 이야기! 퇴사한 이야기를 쓸 거야! 했을 때, 그건 조금 유행이 지난 이야기예요,라고 편집자가 조언을 해줄 수는 있다. 그런 조언을 들었을 때 뚝심 있게 밀고 나갈지, 그만둘지는 각자의 판단이 필요한 일이고.


뭐 요즘에는 특정 소재로 조각 원고 여럿을 모아 짧은 시간에 공저책을 내주는 출판사들도 많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책을 쓴 사람이 진짜 작가가 되는 경우는 거의 보질 못했다. 그저 출판사의 상술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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