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출판업계의 권장 행동양식

by 이경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라는 게 있다. 지구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여섯 단계만 거치면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는 이론이다. 유튜버 99대장 나선욱이 "아는 형님의~ 아는 사람의~ 아는 친척의~ 아는 누나의~ 아는 형님이요~" 하면서 인맥을 과시하는 것 역시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을 이용한 개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한국의 특정 직종에서는 굳이 여섯 단계까지 거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바닥을 이루기도 한다. 가령 출판업계 같은 곳이 그렇다. 한두 다리 혹은 많아도 서너 다리만 거치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SNS에서 친구가 그리 많은 사람은 아니다. 페이스북 친구라고 해봐야 600여 명 정도. 페이스북에서는 '함께 아는 친구'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재미난 건 600여 명의 친구 중에 대부분의 작가나 출판 편집자들은 함께 아는 친구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중엔 함께 아는 친구가 200명에 육박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한 출판업자는 내 페북 친구 600명 중 200명을 함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출판업계에서 "아, 그 작가? 아, 그 편집자?" 하면 높은 확률로 알 수도 있는 사람인 셈이다. 당장엔 누군지 몰라도 한두 다리 건너 수소문해보면 금방 알 수도 있게 된다는 뜻.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작가'란 부크크 같은 POD 출판이나 자비출판으로 책을 낸 사람이 아니라, 출판사의 문턱을 넘어 책을 낸 사람을 말한다.


일례로 지난주에는 한 출간 작가님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세 시간 정도 수다를 떤 일이 있는데, 이 작가님께서 한 편집자가 지나가면서 뱉은 말을 들려주었다. 그 말은 "그 작가님은 그래도 책을 내셨더라고요." 하는 발언이었다. 모든 편집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편집자들은 출간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 지망생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편집자들은 어쨌든 출간을 한 사람이라면 자기들만의 바운더리에 넣어놓고 생각한다는 것. 똑같이 출판사에 투고하더라도 출간 경험이 없는 작가 지망생의 출간 기획서보다, 출간 이력이 있는 작가의 출간 기획서를 한 번이라도 더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테고.


나는 책을 다섯 낸 사람이야, 나는 아는 작가와 편집자가 많아, 같은 잘난 척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만큼 이 출판업계에서는 경계선을 쳐놓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나갈 정도로 좁디 좁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작년 출판업계에서는 재미난(?)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 소설가가 인터넷서점에서 몇몇 다른 소설가의 작품에 별점 테러를 한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별점 테러를 한다는 소설가의 정체는 삽시간에 온라인으로 퍼져나갔다. 그 소설가가 실제로 별점 테러를 한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런 소문만으로도 한 소설가의 평판이 곤두박질쳤던 사건이기도 하다.


올해 나는 비슷한 일을 한번 겪었다. 한 글쓰기 강사와 온라인에서 시비가 붙은 일이 있었는데, 그가 내 책에 별점 테러를 하고 간 것. 이 일을 한 소셜미디어에 올렸더니, 그 글쓰기 강사와 나를 동시에 알고 있는 한 편집자는 "놀랐네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러게요. 저도 놀랐네요. 껄껄껄.


재미난 건 이 편집자 분이 몇 년 전 내 책을 소개하는 피드를 한 번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 글쓰기 강사가 "저도 구입했습니다. 편집자님 추천은 믿음이 가네요." 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글쓰기 강사가 내 책을 구입했다는 댓글도 그냥 개뻥이 아니었을까 싶다. 믿기 어렵겠지만,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은 출판 편집자와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서 알랑방구를 껴대는 일이 흔히 있는데, 뭐 그런 류의 댓글이 아니었나 싶다.


결론은 출판 업계는 케빈 베이컨의 6단계까지 갈 필요도 없이 몹시도 좁고 좁다는 것. 그러니 행동거지를 조심히 해서 나쁠 게 없다. 물론 이게 다른 작가와 글을 비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심심찮게 몇몇 작가와 책을 비판하는 일이 있다. 주로 책에 대한 악평을 남기는 일인데, 미리보기로만 보았는데도 오탈자가 예닐곱 개가 나온다든지, 출판기획자가 썼다면서 얼토당토않은 글로 덮인 책을 보았을 때 그렇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누구 앞에서든 당당하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편이다.


하지만 별점 테러처럼 앞에서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면, 이 좁은 출판 업계에서는 조심하는 게 좋다. 그릇된 행동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질 테고, 그런 소문들로 인하여 글쓰기 강사는 왜 그런 짓을 벌여야 했는지 계속해서 자신을 설명하고 증명해 내야 할 테니까.



글쓰기강사.jpg 별점 테러범 글쓰기 강사는 과연 과거 내 책을 구입했을까. 출판업계 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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