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보여주기

by 이경


오후 <보여주기>




오후 작가의 책은 앞서 몇 번 읽어보았다.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같은 책들. 문제는 나란 인간은 집중력 출타한 주제에다가 병렬독서를 하는 바람에 웬만한 책은 완독을 하지 못한다는 것. 앞서 보았던 오후 작가의 책들 역시 그렇게 사놓고는 완독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인지 오후 작가의 이번 책은 뭔가 도전적인 마음까지 들어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과연 완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과여언...


결론은? 했다, 완독. 그것도 이틀 만에 다 읽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원래는 하루에 한두 꼭지만 읽자 했는데, 후루루룩 페이지가 넘어갔다능.


에필로그에 따르면 작가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엔 '안티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쓰려 했었다고. 그러니까 '성공'이란 얼마나 우연인가 하는 책을 쓰려 했었지만 결과물은 자신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나왔다고.


책은 한때 성공했던 것, 혹은 지금까지 성공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런저런 사례들을 이야기해 주는데 그 배경에는 책의 띠지 내용대로 우연도 있고, 탁월함도 있고, 재치도 있고, 치사함도 있다. 꼭지 하나하나가 흥미롭기도 하고, 알고 있으면 어디서 아는 척 잘난 척하기에도 좋아 보인다. 뭔가 지적 허영을 채워주기 좋은 이야기들 묶음이랄까.


가령 첫 꼭지부터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지금처럼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로 1900년대 초의 도난 사건을 언급하는 식이다. 이 얼마나 도발적인 소재이며, 도발적인 전개 방식인가.


1988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있어 당시 언더독으로 평가받던 서울이 선정될 수 있었던 배경, 전기차 하면 자연스레 넘버원로 생각되는 테슬라의 성공, 롤렉스나 명품들의 성공, 시진핑, 사마의, 나이팅 게일,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인물들까지.


한마디로 이 책은 재미난 역사서이기도 하고, 인문학을 다루는 책이기도 하면서, 상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역시나 오후 작가의 에필로그에 따르면 '잡탕' 같은 책이 되었다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아주 맛있는 잡탕이 되었달까.


표지의 바나나도 어쩐지 앤디 워홀 돋는 게, '보여주기'라는 제목에도 딱 어울리는 거 같고.


책의 끄트머리에는 부록으로 '책을 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오후 작가와 나의 공통점이라면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고졸)과 투고로 책을 내었다는 점일 테고... 차이라면, 이경은 아직 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에 반해 오후 작가는 첫 책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부터 10쇄를 찍었다는 것이 아닐까. 아이고, 배야... 십쇄라니 부러워 죽겠네.


여하튼 책에 실린 부록을 읽으면서 느낀 거지만, 내가 비록 완독은 못했어도 오후 작가의 책을 여럿 사놓는 걸 보면 이 사람이 기획을 참 잘한다는 생각이다. 자극적이고 궁금한 이야기들. 그러니 투고로 책을 내려는 작가 지망생이라면 이 책에 실린 부록이라도 한번 읽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투고하고픈 작가 지망생에게 부록 정도의 분량이 너무 적다면 이경의 <난생처음 내 책>이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 깔깔깔.


아무튼 책도 재밌고, 배도 아프니, 굳이 책에서 흠을 잡아보자면 역시 오탈자 제보가 가장 좋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딱 하나의 오탈자가 눈에 밟혔는데, 88올림픽 개최지 선정 관련 꼭지에서 '인공기 게양'을 '계양'으로 쓴 것. 책에는 작가의 정치적 드립이 가끔 나오는데 이 오탈자는 아마도 4월 10일 총선의 최대 격전지가 '계양 을' 지역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속셈이 아니었을까...(아님...)


아마도 작가와 편집자 모두 계양이 옳다고 생각하고 넘어간 단어가 아닌가 싶은데, 게양과 계양이 헷갈릴 때는 '게시판'을 생각하면 좋다고 합니다. '계시판'이 아니듯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제 게양과 계양을 헷갈리지 않게 됩니다, 네네...


오후의 <보여주기> 재밌네요. 본문도 좋고 부록도 좋습니다. 추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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