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Jun 13. 2024

글쓰기의 오만방자한 사람들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예전에는 장애인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하다는 이유로 당사자의 동의 없이 도우려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때는 동의를 먼저 구하고서 행동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듯하다.


나는 이걸 언제 깨달았는가 떠올려보면 십수 년 전 UN 국제 행사 때 맹인 뮤지션인 스티비 원더의 마이크가 켜지지 않자, 옆에 앉아 있던 김연아가 스티비 원더의 비서에게 동의를 구한 후 마이크를 켜주었다는 일화를 통해서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일을 두고서 많은 기사를 쏟아냈는데, 무엇보다 앞을 볼 수 없는 스티비에게 무조건적인 도움이 아닌 동의를 먼저 구한 김연아의 행동을 두고서 칭찬하였던 일이 생각난다. 내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배려랍시고 동의 없이 행한 행동이 사실은 민폐일 수 있다는 것을 김연아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타인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동의 없이 남을 돕고 가르치려는 행동. 특히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이런 행동을 가했는지,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는 신조어가 아닌 마치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지점의 우먼스플레인도 있겠고, 세상에는 관계에 따른 이런저런 익스플레인들이 존재할 것이다. 설명을 하는 사람이야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했을지언정 다짜고짜 설명을 해대고 가르치려는 그 행동 앞에서 당사자는 당혹감과 자칫 오만방자함을 느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오만방자함은 글쓰기 세상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당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다, 내가 당신을 가르치겠다, 내 의도는 결코 나쁘지 않다구!"

자신이 이루어낸 소기의 성과를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으면 미쳐 죽겠다는 듯이 아무런 동의도 없이 가르치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행한 행동의 결실이 남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의 의도가 선하든 말든 나는 아무런 동의 없이 지나치게 가르치려는 사람들을 보면 혐오감이 깃든다.


나처럼 하면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나처럼 하면 전자책을 낼 수 있습니다.

나처럼 하면 투고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나처럼 하면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나처럼, 나처럼, 나처럼...


자기 글을 써서 하는 잘난 척이야 눈꼴셔도 뭐라 할 수 없겠지만, 댓글 등을 통해 특정인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 급격하게 피곤해지는 것이다. 

글쓰기 플랫폼에서 활동하다 보면 고작 하나를 내고서 출간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일삼는 사람들도 보게 된다. 개중엔 작가가 되기 위해선 다독을 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으십시오, 같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타인의 시간 활용을 재단하려 드는 사람도 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세상의 진리인양 행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동의 없이 설명하려 드는 사람들. 얼마나 피곤한가. 아, 쏘 타이어드.


이외에도 글쓰기 세상에서 오만방자함을 보이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사람들이 나로 인해 글쓰기의 재미를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둥, 사람들이 나를 통해 책을 많이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둥,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둥.


다들 글쓰기라는 무시무시한 악령이 만들어낸 자의식 과잉 환자들 같다.




작가의 이전글 한 꼭지 읽고 말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