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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Jun 24. 2024

관심작가는 내 서재를 보여주는 일



며칠 스레드 어플을 깔았다. 가끔 머저리들이 쓰는 머저리 같은 글을 읽으려 한 번씩 들어가곤 했는데, 머저리짓이라면 나도 뒤지지 않는다, 내가 아예 머저리가 되어 글을 써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브런치 이런저런 소셜미디어를 하면서 팔로워보단 팔로잉이 적은 숫자를 유지한다. 한마디로 맞구독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중에 브런치의 팔로잉(관심작가)은 며칠 전 브런치 공식 계정만 제하고서는 모두 지우기도 했다. 애초에 글쓰기를 연습하려고 시작한 브런치였는데 관심작가가 늘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치 보는 글쓰기를 하는 것만 같아져서.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관심작가야 다시 채우면 그만이고.


그런데 스레드를 하다 보니 누군가 팔로워는 많은데 팔로잉이 적은 사람을 보면 경계를 하게 된다는 글을 보았다. 연예인 병에 걸렸거나 소통을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나? 그 피드를 보면서 사람의 생각이란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싶어졌다. 그러다 다른 소셜미디어는 몰라도 스레드에서는 나도 머저리처럼 막 아무 사람이나 구독버튼 눌러봐야겠다 싶어지기도 하고.


소셜미디어의 팔로잉을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는 유저들의 목적에 따라 제각각의 형태로 이루어지겠지만, 팔로잉 숫자가 적다고 연예인병으로 몰고 가는 것은 좀 재밌는 발언 같다. 특히나 글을 좀 써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브런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나는 팔로잉이 수천이 넘어가거나, 그 와중에 팔로잉과 팔로워의 숫자가 비슷한 이들을 보면 타인의 글을 읽을 생각보다는 그저 자신의 팔로워를 늘리기 위한 맞구독충인가 싶어 지던데?



누군가의 서재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소셜미디어의 팔로잉 목록, 특히 브런치 같은 긴 글 위주의 소셜미디어에서 팔로잉 목록은 마치 나의 서재를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글은 이렇다, 내가 추구하는 독서는 이렇다, 한마디로 나의 취향이란 이렇다, 하는 걸 보여 줄 수 있는.


물리적으로 제약이 있는 공간에 될 수 있으면 양서만 넣고 싶지, 나쁜 책까지 두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브런치에서 팔로잉을 수천씩 두는 사람은 비교적 물리적 공간이 넓은 온라인의 특성을 살려 나쁜 책까지 모두 보관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물론 그들은 그걸 두고 소통이니 응원이니 같은 단어를 사용하겠지만, 내가 볼 때는 그저 합리화와 얄팍한 친목질에 불과하다. 수천의 팔로워들이 올리는 글을 모두 읽어낼 수도 없을 텐데 그게 무슨 소통이 되고, 응원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브런치에서 관심작가를 두지 않고 있지만, 누군가의 글을 읽고서 맘에 들 때는 그의 관심작가 목록을 대충이나마 훑어보기도 한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브런치 유저들이 있는데 누군가의 구독 리스트에 그들이 공통으로 있으면 나는 구독 버튼을 누르기가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물론 인간관계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것이라 내가 싫어하는 이를 누군가는 좋아할 있을 테고, 내가 선인이라고 여긴 이가 누군가에겐 악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진짜 작가라면 쓰는 것 못지않게 읽는 것도 잘 해야하는 사람이며, 나와 취향이 너무 다른 이의 글을 오래 읽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구독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이처럼 나에게 팔로잉 목록이란 누군가의 서재처럼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팔로잉 목록에 수천의 숫자가 있는 것보다는 적은 숫자를 지닌 이들의 글의 오히려 신뢰가 간다. 그들은 연예인 병에 걸려서 그러는 게 결코 아닐 것이며, 소통이란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팔로잉을 늘리는 사람도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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