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던 이름 하나가, 우리의 시간을 다시 움직였다.
연락처를 정리하던 오후였다.
스치듯 내려가던 화면이 한 이름에서 멈췄다.
1년 가까이 연락하지 못했던,
그럼에도 30년 동안 내 삶 언저리에 늘 머물러 있던 친구.
별다른 감정도,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그저 “어떻게 지내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벨이 두 번 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생일이야.”
가볍게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약속이 잡혔다.
그 주 토요일, 밥을 사기로.
뭘먹을까? 궁리하다가 냉면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연희동 청송냉면에서 마주 앉은 우리는
오랜 친구답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냉면과 만두를 나눠 먹으며
1년의 시간의 공백을 메웠고,
식사 후, 나는 가볍게 말했다.
“드라이브나 할까?”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주로 향하는 길,
조수석의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미소를 흘렸고
그 모습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말똥도넛에 도착해
도넛과 커피를 시켜놓고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속의 창밖 풍경도
우리 대화를 방해하지 못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이니만큼
대화는 편하고 즐거웠다.
비가 잦아들 무렵,
우리는 문산으로 넘어가
수다로 허기진 배를
문산에서 유명한 50년 전통 박가네 삼거리 부대찌개에서 저녁을 챙겨 먹었다.
평소였다면 맛있는 저녁이면 충분했겠지만
그날은 이유 없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식탁 위의 뜨거운 냄비,
김이 오르는 사이사이로 보이던 그녀의 표정,
그리고 편안한 침묵.
점심부터 이어진 공기는
어느새 낯설 만큼 부드러워져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라디오는 작은 볼륨으로 흐르고
창밖에는 비가 그친 도로의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하루의 흐름이 단순한 친구의 만남이 아니라는 걸
둘 다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무심히 말했다.
“다음 주에 서천 가.”
그녀가 즉시 물었다.
“나도 갈까?”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 안엔 조용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
그 말 이후,
우리의 거리는 불필요한 설명 없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