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친구들, 아이들… 그리고 남해 230평이 남긴 마지막 선물
어젯밤, 아내가 여행가방 두 개만 들고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집을 천천히 둘러보고, 우리와 아이들을 향해 짧게 말했다.
“갈게.”
몇 달 전, 흐느끼며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차분함이었다.
나는 문밖으로 나가는 그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으로 조용히 흩어졌다.
나는 베란다 창문을 열어 밤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맑았다. 너무나도.
“이런 날은 눈이라도 내려주지…”
세상은 평온했지만, 내 마음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꺼낸 담배 연기가 베란다 창밖으로 사라지고
아래로 아내의 차가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가는 모습만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날 밤, 어머니가 오셨다.
냉장고 속 재료만으로 금세 한 상을 차려 주시고 말씀하셨다.
“이제 어쩔 거냐?”
“일단은 도우미 아줌마 쓰면서 생각해보려구요.
저도 이혼은 처음이라…”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셨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깔끔하게 잘 보내줘라.”
그 말을 남기고 어머니는 딸을 한번 안아주시고는 총총걸음으로 나가셨다.
딸과 나는 쇼파에 나란히 앉아 TV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 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며칠 전 술김에 흘린 내 이야기를 듣고
여섯 명이 밤중에 우리 동네로 모여오고 있단다.
몹쓸 놈들… 창피하게.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놈들은 벌써 나 없이도 한바탕 떠들고 있었다.
그러나 술이 몇 잔 돌자 분위기는 금세 조용해졌다.
조용히 한 녀석이
“힘들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 녀석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금은 멍할거다…
앞으로 3년이 진짜다.
이혼 결심할 때보다 세 배는 더 힘들 거다.
이제 네 짐을 같이 들어줄 사람이 없잖아.
한 사람이 없는게 여유로움으로 다가올때 진정 싱글 라이프의 시작인거다.”
이혼을 몇년전에 한 그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한이 밀려왔다.
나는 소주를 계속 털어 넣었다.
그러다 또 다른 한 녀석이 작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바른 생각’이라고 적힌 콘돔 상자였다.
“앞으로 쓸 일이 많을 거다. 대상 없으면 내가 소개해줄게.”
그 허황된 농담 하나에 웃으며 나는 그날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밤이 깊어 돌아온 집에서 토악질을 하고
거울 속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아내없는 첫날밤을 보냈다.
일주일 뒤, 나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나중에 대표님이 휴직으로 바꿔줘서 2년 더 다녔지만
그날의 사표는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방학 중이던 아이들과 한 달간 전국을 돌며 지냈다.
목적지도 없이 길이 보이면 달렸고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있는 게 더 편했다.
그러다 어느 남해 바닷가 마을,
바위 위에 앉아 아이들과 핫도그와 커피를 먹으며 낄낄대던 순간
앞에서 땅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 주민들의 말이 들렸다.
“아빠도 여기 땅 하나 사서 카페나 할까?”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얼마 후 나는 정말 남해 바닷가 230평 땅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조용히 꿈꾸기 시작했다.
하얀 벽에 영화가 비치고, 커피 향이 흐르는 작은 카페의 주인을.
그날 술자리의 친구가 말했던 그대로였다.
이혼 후 3년은, 결심할 때보다 진짜 세 배는 더 힘들었다.
아이들도 나도 그 시간들은 몸과 마음을 다 갈아 넣는 과정이었다.
이젠 대학에 들어간 딸이 TV 앞에서 소리를 치고 있다.
“아빠! 빨리 와! 시작했어!”
TV 속 예능 프로그램에서
3년전 우리가 핫도그를 먹던 그 바닷가가 나오고 있었다.
그 옆 내 땅 옆 바위에서 연예인들이 프로그램 오프닝을 찍고 있었다.
촬영 허락도 딸이 내 몰래 승낙했단다.
월권이… 마누라급이다.
“이제 저기다가 카페나 해볼까?”
내 말에 딸이 웃으며 말했다.
“아빠 혼자 어떻게 해. 할머니도 그랬잖아.
좋은 사람 만나서 같이 하라고.”
혼자 살면 마음대로 될 줄 알았지만
혼자라서 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고
이혼한 지 5년.
아이들은 중학생에서 대학생이 되었고
이젠 나의 가장 든든한 친구들이다.
나는 정말 여섯 개의 체인점을 가진 카페 사장이 되었다.
어떤 날은 숨 넘어갈 만큼 바빴고
어떤 날은 주저앉고 싶었지만
결국 나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카페를 접고 이젠 반쯤 한량으로 살아가고 있고
수년전, 내가 처음 카페를 꿈꿨던 남해 바닷가 230평 그 땅은
지금은 내 차지가 아니다.
이제 그곳은
내 어머니가 가끔 내려가
꽃나무를 가꾸는 어머니의 조용한 휴식처가 되었다.
그 땅은
내가 카페를 짓기 위한 목적지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회복하고 다시 서기 위한
작은 안식처였는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는 지금,
나는 또 조용히 웃는다.
아! 그리고 그때 술자리에서 받았던 그 콘돔?
한 개도 못 써보고 2년후 버렸다....
아까비.....
그렇게 지낸게 ... 이 친구를 만날려 햇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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