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이름이 불편해진 순간들

"좋아하는 사람과 걷는 길은, 어느새 내 마음의 지도를 바꿔놓고 있었다"

by 까칠한 한량

2022년 10,11월


서천 이후, 뭔가 달라졌다.

그녀에게 연락하는 핑계가 자꾸만 늘어났다.

"이번 주 시간 되면 어디 갈래?"

주중이든 주말이든 시간만 나면 우린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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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어느 평일 저녁,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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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끝나고 바로 만나 양평으로 향했다. 두물머리 가는 길,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강변을 걸었다.

저녁은 정배식당의 할머니 백반.

만두국과 함께 그녀는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어서 나도 덩달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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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원래 이렇게 잘 먹었어?"

그녀가 물었다.
"너랑 있으면 그런가 봐."

농담처럼 던졌는데, 반은 진심이었다.


10월 마지막 주말, 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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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아침고요수목원 근처 작은 카페. 그녀가 좋아하는 핸드드립 커피가 맛있다는 곳이었다.


"여기 콜롬비아 원두가 정말 좋아. 너도 마셔봐."


우리는 창가에 앉아 한참을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고, 또 아무 말 없이 밖을 바라보고.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그게 더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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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첫째 주, 수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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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걸을까?"

내가 제안했고, 그녀는 "좋지" 하며 따라왔다.

수원 화성 성곽길을 천천히 걸었다.


단풍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고, 바람은 차갑지만 상쾌했다.

"야, 근데 요즘 우리 너무 자주 만나는 거 아니야?"
그녀가 물었다.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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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으로 화성 앞 보영 만두. 쫄면은 전국 최고지...

뜨끈한 국물을 마시며 그녀가 말했다.
"너랑 있으면 편해."

"나도."



11월 중순, 남양주 물의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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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인생샷 나온대." 그녀가 먼저 카메라를 꺼냈다.

물의정원 근처 카페 테라스에서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찍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혼자 사진을 보다가 깨달았다.

이건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마지막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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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어디론가 걸었다. 이번엔 팔당의 둘레길.

한참을 걷다가, 나는 멈춰 섰다.

"야."

"응?"

"나… 너랑 친구 안 할래."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뭐?"

"친구 안 할래."

"왜?"

"너가 여자로 보여."


침묵.


그녀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픽 웃었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

"뭐?"

"나도 너 남자로 본 지 좀 됐거든."


바람이 불었다.
석양이 우리를 물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를 졸업했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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