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도 모른 척, 화나도 안 난 척. 나를 지키는 어른의 연기를 배우며
지나간 날들을 가만히 복기해 봅니다.
그때는 참 서툴렀습니다.
말 한마디를 못 참아서, 혹은 오해가 깊어서 떠나보낸 인연과 시간들...
젊을 땐 그런 기억들이 떠오르면 혼자 씁쓸해하거나,
일종의 그리움처럼 가슴에 몽글몽글 맺히곤 했습니다.
그게 참 아프면서도 소중한 흘린 눈물의 결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좀 드니, 이 감정의 결이 달라집니다.
애틋해야 할 후회나 자기 연민이, 몸이 고단하고 세상살이에 치이다 보니
자꾸만 화(火)가 되어 튀어나옵니다.
슬픔으로 남아야 할 것들이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러나"
싶은 억울함으로 바뀌고, 별거 아닌 일에도 속에서 뜨거운 게 욱하고 올라옵니다.
아마 중년의 터널을 지나는 분들은 느끼실 겁니다.
참았던 감정이 엉뚱한 곳에서 터져버릴 때의 그 당혹스러움을요.
그래서 저는 얼마 전, 큰 결심을 하나 했습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맘 놓고 마시던 그 술, 이제 안 먹기로 했습니다."
술이 주는 낭만을 왜 모르겠습니까.
김광석 노래 한 곡 틀어놓고 술 한 잔 기울이면 세상 시름 잊혀지는 것 같죠.
하지만 술기운이 들어가면 내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그 틈을 타 억눌러둔 화가 고개를 드는 걸 느꼈습니다.
술김에 하는 말, 술김에 내는 짜증... 그게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더군요.
그래서 '화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원천 차단하기로 했습니다.
술의 달콤함 대신 쌉싸름한 차 한 잔 마시며 정신을 맑게 붙잡아 두는 게
지금의 저에겐 더 필요한듯해서 입니다.
중년의 인문학은 결국 연출력 싸움인 것 같습니다.
다 알아도 모르는 척, 속에서는 천불이 나도 겉으로는 "허허, 그럴 수 있지" 하고 안 난 척 넘기는 것.
젊을 땐 그게 가식 같고 비겁해 보였는데,
이제 보니 그게 나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어른의 기술 같습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건,
대단한 철학을 읊는 게 아니라 오늘 욱하고 올라오는 마음을,
짐짓 모르는 척 눌러 담는 그 순간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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