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의 문전박대를 넘어 4년의 단골이 된 이유, 된장찌개 한 그릇의 위로
나에게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6살, 죽음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에 할머니를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할머니의 손맛이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감각이자,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였다.
그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우연히 만난것 같은 집이 있다.
양평 정배리의 정배식당.
하지만 첫 만남은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는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밥은 이미 떨어졌고, 주인 노부부는 TV 연속극 삼매경에 빠져 나를 본체만체했다.
손님 대접은커녕 뒷전으로 밀려난 기분에 서운함을 가득 안고 식당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묘한 이끌림에 일주일 후 다시 그곳을 찾았고,
그날 이후 나의 4년 단골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양평에 갈 일이 생겨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만 있다면 고민 없이 정배식당으로 향한다.
물론 여전히 운이 없으면 소위 빠꾸를 맞기도 한다.
재료가 소진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헛걸음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곳을 찾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최근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할머니는 생선이 다 떨어졌다며 손을 내저으셨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그냥 남은 반찬에 밥만 주셔도 된다"며 마구 달래어 기어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생선 한 토막 없어도 이곳의 밥상은 나에게 완벽한 보약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집의 진짜 주인공인 된장찌개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배식당의 된장찌개를 빼놓고 맛을 논하는 것은 헛다리를 짚는 일이다.
직접 담근 장에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끓여낸 그 국물은 한 술 뜨는 순간 조미료에 지친 속을 단번에 씻어내린다.
구수하면서도 시원한 그 맛은 기교 없는 정직함 그 자체다.
밭에서 갓 캐온 듯한 도라지 나물과 쌉싸름한 장아찌들이 찌개와 어우러지면,
내 기억 속에는 없는 할머니가 나를 위해 차려주셨다면 이런 밥상일거라 생각이 든다.
“몸이 고되니 제발 SNS 같은 곳에 올리지 마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하지만 나는 이 사라져가는 온기를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노부부의 깊게 팬 주름을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는 아릿한 예감이 나를 더 서두르게 만든다.
식당을 나서는 길, 처음의 무심함은 어느새 나를 배웅하는 따뜻한 온기가 되어 있었다.
사라지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이 정직한 된장찌개 한 그릇을 마주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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