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선율과 호두 파이, 그리고 다시 찾은 행복의 리듬
양평을 밥 먹듯 드나들었지만, 이런 구석은 또 처음이다.
서종리의 어느 구비진 골목길을 따라 차 바닥이 긁힐까 조마조마하며 500m쯤 밀어 올린다.
이 길 끝에 정말 뭐가 있긴 한 걸까 싶은 의구심이 한계치에 다다를 때쯤,
동네가 발아래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막다른 꼭대기에 카페 인더숲이 툭 나타난다.
문을 열면 시각보다 청각이 먼저 반응한다.
전설적인 알텍 랜싱(Altec Lansing) 고출력 스피커가 뿜어내는 농밀한 음향이 공간을 압도한다.
벽면을 빈틈없이 채운 LP판들을 보고 있으면, 집 한구석에 턴테이블을 들여놓겠다던 나의 낡은 로망이 이곳에서 대신 구현되고 있음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주인장의 감각은 지독하게 세련된 척하지 않아 오히려 더 믿음이 간다.
공간 곳곳이 생각할 여운을 주다가도, 어느 구석에선 피식 웃음이 나는 위트가 숨어 있다.
주인장의 취향에 감탄하다가도 그 인간적인 맛에 금세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향이 깊고 목 넘김이 매끄럽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여사장님이 미국 거주 시절 옆집 할머니에게 직접 전수받았다는 호두 파이다.
요즘 유행하는 자극적인 단맛과는 궤를 달리한다. 투박할 정도로 고소하고 담백한데, 그게 지독하게 중독적이다. 씹을수록 호두 본연의 풍미가 살아나며 알텍 랜싱이 토해내는 선율과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좋아하는 곡 몇 곡을 신청해 듣고 있자니,
서울에서 끌고 온 복잡한 번뇌들이 스피커의 진동에 털려 나가는 기분이다.
사실 나는 커피 한 잔에도 꽤나 까칠한 잣대를 들이대는 편이다.
그래서 정말 지독하게 맛있는 커피가 간절할 땐 늘 양평 서종리의 에딧의 커피스토리를 떠올린다.
달궈진 모래 위에서 추출되는 그곳의 커피가 장인의 집념이라면, 이곳 인더숲은 음악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 버무려진 온전한 힐링이다.
이제 내 안의 양평 지도는 명확하게 재편됐다.
혀끝의 감각을 깨우고 싶을 땐 에딧으로,
무너진 마음의 리듬을 되찾고 행복해지고 싶을 땐 이곳 인더숲의 굽이진 골목을 오를 것이다.
서종리가 내려다보이는 그 높은 곳에서,
나는 나만의 인생이라는 LP판에 어떤 선율을 새기며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행복은 생각보다 높은 곳에, 그리고 아주 구비진 길 끝에 숨어 있었다.
그 길을 올라온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주고도 남을 만큼.
인더숲 (IN THE SOOP) 경기 양평군 양서면 골용진길 60 (서종리가 내려다보이는 골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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