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재의 안목과 블루리본의 훈장보다 정직한, 횡계 노포의 빨간 위로
평창 횡계, 해발 700미터의 고원 지대는 겨울이면 칼바람이 주인이 되는 동네다.
눈 덮인 대관령을 넘어 이 척박한 땅에 발을 디디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오삼불고기 거리를 찾는다.
그중에서도 도암식당은 입구부터 '나 노포요'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세월을 견디느라 조금 삐걱거리지만,
그 소리가 오히려 이 집의 내력을 증명하는 전주곡처럼 들린다.
식당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코끝을 찌르는 것은 매콤하면서도 달큰한 고추장 양념의 향이다.
세련된 인테리어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대신 벽면에 사정없이 붙어 있는 '블루리본' 스티커들이 이곳의 공력을 증명한다.
이 험준한 산 언저리에 이토록 많은 파란 리본이 붙은 이유를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최근 안성재 셰프가 다녀간 뒤로 외지 손님이 더 북적이는 느낌이지만, 다행히 맛의 결은 흔들림이 없다.
주인장의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몇 명?"이라는 말 한마디는 여전히 이 집 특유의 무뚝뚝하고 미지근한 온도다.
오삼불고기 2인분을 주문하면 선홍색 돼지고기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오징어가 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채 철판 위에 올라온다. 하지만 이 집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배추’다. 쌈으로 나오는 배추는 물론이고, 함께 나오는 황태국에도 특이하게 배추가 듬뿍 들어있다.
고랭지 산기슭의 냉기를 견디며 제 몸 안에 당분을 비축한 겨울 배추의 달큼한 맛이
쌈과 국물에서 물씬 풍겨 나온다. 이 집의 진짜 시그니처는 오징어도, 삼겹살도 아닌
바로 이 배추의 단맛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오징어는 동해의 파도를 견딘 놈답게 육질이 단단하면서도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온다.
냉동 삼겹살의 적절한 기름기는 고추장 양념의 날 선 매운맛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여기에 아삭한 배추 쌈을 곁들이면 뜨겁고 매운맛이 중화되며 기분 좋은 포만감이 밀려온다.
자극적인 양념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맑은 황태국은 배추 덕분에 한층 더 깊고 시원하다.
고기를 다 먹어갈 때쯤 "밥 볶아 드릴까?"라는 제안을 거절하는 건 이 식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남은 양념에 밥과 김 가루, 그리고 들기름을 듬뿍 넣어 볶아내는 과정은 일종의 의식 같다.
철판 바닥에 눌어붙은 밥알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낼 때 나는 금속음은 식사의 정점을 알리는 종소리다.
도암식당의 오삼불고기는 대단히 화려하거나 전례 없는 미식의 극치는 아니다.
하지만 찬 바람 부는 횡계 벌판에서 이만한 위로를 찾기도 쉽지 않다.
안성재 셰프의 예리한 미각이나 블루리본의 명성보다 더 강렬한 것은, 척박한 땅에서 길어 올린 배추 한 잎의 정직한 단맛이다.
언젠가 이 노포의 계단이 너무 낡아 더 이상 오를 수 없게 된다면, 우리는 이 투박하고도 달큼한 위로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쉼 없이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맛을 만나는 건, 꽤나 근사한 행운이다.
도암식당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로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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