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깃든 시간이 차려낸 위로, 양주 '산하'의 정갈한 한상
양주 백석읍, 굽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기산로 초입 산자락 아래 정갈하게 자리 잡은 '산하'를 만난다.
이름 그대로 산을 등지고 앉은 이곳은 화려한 도심의 소음 대신 고즈넉한 풍경이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차를 세우고 내리면 코끝을 스치는 건 알싸한 산바람과 주방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구수한 된장 냄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낡았지만 반질반질하게 닦인 나무 탁자와 집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흔적은 분명한데, 구석구석 정갈하게 관리된 모습에서 이곳을 지켜온 이의 성정이 읽힌다.
자리에 앉아 '한우 불고기 버섯 전골'을 주문하고 나면 낡은 탁자 위에 수저가 놓인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이 짧은 긴장감은 늘 설렌다. 잠시 후 상이 차려지는데,
미리 재워둔 고기가 아니라 주문 즉시 그 자리에서 양념해 내놓는
선명한 선홍빛 불고기가 전골냄비에 담겨 나온다.
첫 숟가락으로 떠 올린 국물은 맑으면서도 깊다.
즉흥적으로 배어 나온 고기의 감칠맛과 표고, 느타리, 팽이버섯의 향긋함이 입안에서 고요하게 퍼진다.
억지로 꾸미지 않은 날것의 싱싱함이 고기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여기에 단돈 천 원이라는 가격이 미안해지는 우거지 된장찌개를 곁들이면 완성이다.
진한 어된장 국물에 푹 익은 우거지는 한 수저만으로도 속을 편안하게 쓸어내린다.
식탁 위에는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순 무침, 명이 장아찌, 머위 장아찌가 올랐다.
하나하나 손이 많이 갔을 이 찬들을 보며 인생 2막을 생각한다.
화려한 양념 없이도 제맛을 내는 이 장아찌들처럼,
나도 이제는 본연의 색으로 깊어질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소박한 시골 밥상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세련된 감각이나 자극적인 맛은 없다.
식당의 낡은 분위기나 주인의 무심한 듯 단정한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투박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투박함이야말로 세월이 정제해낸 진짜 맛이다.
식당 문을 나서며 다시 산 아래 풍경을 본다.
정직한 재료가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다음번엔 마음이 유난히 출출한 날,
다시 이 산자락을 찾게 될 것 같다.
산하 경기 양주시 백석읍 기산로 410
한량의 한 줄 팁: 천 원짜리 된장찌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고구마순 무침은 꼭 두 번 리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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