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밥상에 차려진 항정살과 오징어, 그 기묘하고도 지독한 조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이케아의 거대한 파란 창고를 지나 좁은 길로 접어들면, 세련됨과는 담을 쌓은 식당 하나가 나타난다. '옛고을 시래기'. 이름부터 투박하다 못해 고집스러워 보인다.
주차장엔 흙먼지가 날리고, 입구에 들어서면 구수한 흙내음 섞인 나물 냄새가 코끝을 먼저 툭 친다. 점심시간이면 동행하는 '투덜이'는 이 좁은 골목까지 왜 왔느냐고 궁시렁대지만, 나는 말없이 번호표를 챙긴다.
원래 진짜들은 화려한 전광판 뒤가 아니라 이런 먼지 나는 골목 끝에 숨어 있는 법이다.
자리에 앉아 '시래기 한상'을 주문한다.
말이 한상이지, 시래기밥과 시래기 들깨탕을 중심으로 항정살 수육, 오징어볶음, 양념게장이 줄지어 나온다.
주인공인 시래기는 겨울바람에 몸을 맡기고 얼었다 녹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제 결을 스스로 삭여버린 무청이다. 그 고난의 시간을 통과한 시래기가 갓 지은 밥 위에서 초록빛 흔적을 남기며 누워 있다.
한 숟갈 크게 떠 입에 넣으면, 질길 것 같던 선입견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씹을 새도 없이 스르르 풀리며 입안 가득 구수한 풍미를 내뱉는다.
함께 나온 시래기 들깨탕은 이 집의 숨은 병기다.
걸쭉한 들깨 국물 속에 몸을 담근 시래기는 마치 온천욕이라도 즐기는 양 노곤하다.
한 모금 들이키면 들깨의 묵직한 고소함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을 뜨끈하게 데운다.
항정살 수육이 등장한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항정살은 아삭한 식감 뒤로 고소한 지방의 맛을 터뜨린다.
거친 시래기 밥상에 항정살이라니, 마치 거친 삼베옷 위에 실크 넥타이를 맨 격인데 그게 또 묘하게 어울린다.
여기에 빨간 양념을 뒤집어쓴 오징어볶음과 양념게장이 식탁의 리듬을 완성한다.
자칫 들깨와 시래기의 단조로움에 빠질 뻔한 혀를 매콤한 양념이 사정없이 흔들어 깨운다.
오징어는 탱글하고 게장은 비린내 없이 깔끔하다. 사람들은 마치 전쟁터의 전사들처럼 숟가락을 놀리지만, 나는 그 소란함 속에서도 담담히 나물의 질감을 음미한다.
'백반계의 종합선물세트'라 불러도 손색없을 풍성함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인생도 저 시래기 같지 않은가.
뙤약볕에 말려지고 찬바람에 얼어붙어 이제는 쓸모없어 보일 때, 비로소 누군가에게 가장 깊은 맛을 내어주는 존재. 화려하진 않아도 묵직하게 속을 채워주는 그 맛에 우리는 다시 살아갈 명분을 얻는다.
"식당을 나서며 투덜이의 입가를 보니 빨간 양념이 묻어있다. 맛없다더니, 제일 열심히 비웠다.
역시 인생은 말보다 숟가락이 더 솔직하다.
옛고을 시래기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로47번길 124
#까칠한한량의미식만담#옛고을시래기#고양덕양구맛집#시래기한상#항정살과시래기의밀당#들깨탕의지독한고소함#말라비틀어진것들의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