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지금 빨리 나가자. 서호야, 얼른 옷 입어.”
창밖으로 붉어지는 하늘을 보고 서윤이가 재촉한다. 저녁을 먹다 말고 밥숟가락을 그대로 올려둔 채 서둘러 나갔다. 우린 그렇게 매일 바쁘고 부지런하게 자연이 준 선물을 기꺼이 만끽했다. 바다에 반짝이는 윤슬, 파도에 젖은 금빛 모래, 오렌지빛 구름.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자연을 마주했다. 나는 늘 생각이 많고 머뭇거리다 주저하며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는데 아이는 붉게 물든 노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아는 듯 서둘렀다. 지금이 아니면 놓쳐버리는 순간이 있다는 것, 그 타이밍에 기꺼이 달려가는 법을 이미 깨우친 아이가 놀라웠다.
때때마다의 계절을 열심히 탐닉했다. 모든 감각에 우리의 시간이 기록되었다. 지난 어느 여름. 이른 오전부터 서윤에게 날을 세우고 마음을 열어주기 싫어 꽁해 있던 날이었다. 싱크대에 코를 박고 저녁을 준비하는 나에게 “엄마, 오늘 하늘 진짜 예뻐. 봐봐.”라고, 말해주는 너그러운 나의 서윤. 덕분에 수많은 예쁜 하늘 중, 유난히 더 예뻤던 하늘을 만났다. 핑크빛 구름이 연보랏빛 하늘에 몽글몽글 퍼져있고 몽환적인 모습이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닐까, 착각을 일으켰다. 배스킨라빈스 ‘이상한 나라 솜사탕’ 한입 냠 하고 먹은 것처럼 달달한 예쁜 하늘을 보고 나니 마음이 저절로 누그러졌다. ‘슬기로운 제주살이’와 더불어 ‘슬기로운 엄마’ 사용법마저 깨우친 아이였다. 그 길로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노지에 펴있는 봉선화가 눈에 띈다. 오랜만에 만난 봉선화를 보고 나는 신나게 떠들었다. 아이들도 신난 내 모습에 덩달아 들떴다. 우리는 이 계절을 기록한다. 봉선화꽃을 따고 찧어 열 손가락에 시원한 꽃물을 올리고 개구리 같다고 깔깔거리던 순간, 시큼하고 날것의 향기, 실로 꽁꽁 매둔 매듭이 풀릴까 조심했던 그날을 기억한다. 이날의 기억들이 언젠가 아이들에게 옅은 미소가 될 수 있다면 충분했다.
매일 밤, 곤히 자는 아이들 이마에 검지로 하트를 그려 넣고 손으로 살포시 눌러본다. 오늘 하루 방전된 사랑을 다시 충전하는 시간. 말랑거리는 아이의 볼에, 가슴에, 손등에 하트를 꾹꾹 눌러 담아본다. 찬바람 들까 살짝 닫아둔 창 사이로 은은하면서도 환한 빛이 아이들에게 비친다. 완전하지 않은 보름달도 충분히 밝았다. 달빛이 아이들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아 창을 더 열어본다. 상냥한 달의 기운이 이 아이들에게 전해지기를, 옅은 미소를 띠며 자는 아이의 숨이 내 코끝에 닿는다. 동트기 전 조용한 아침이라 아이의 숨소리만 더 크게 들렸다. 모처럼 아이의 숨을 지켜보고 있으니, 제힘으로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던 어느 날이 떠올라 이른 아침부터 마음이 몽글거렸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모든 것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