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부분 평온했다. 부모님 덕분에 큰 굴곡 없이 자라며 불안이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적이 거의 없었다.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이사나 전화번호 변경조차 없는 익숙한 환경 속에서 거의 30년을 살았다. 그런 나에게 ‘결혼’은 세상의 민낯과 마주하는 첫걸음이었다. 출산과 육아는 두 번째 걸음, 그리고 전세 만기 마다 이사를 반복하며 애썼던 시간은 세 번째 걸음쯤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어려움이면 인생을 알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책임감 있고 다정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 덕분에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내 안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행복과 감사로 다독이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지내던 2020년.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췄다. 백신조차 없던 시절,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모두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두려움이 커져 큰아이는 다니고 있던 유치원을 그만두었고,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지내기를 몇 개월. 버겁고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도 찰나의 행복을 찾으며 버텼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점점 깊어졌다. 남편은 낮에는 체육 강사로, 밤에는 커뮤니티센터에서 운동 지도를 하며 하루를 보냈지만 코로나로 모든 수업이 중단되었다. 처음에는 금세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현실은 더 나빠져만 갔다. 15년간 이어온 그의 일은 그렇게 멈춰 섰다.
코로나 시국의 직격탄을 맞은 우리 집은 세상의 민낯, 그 중심에 있었다. 마침 만기된 전셋집까지. 안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마치 파도가 넘실대는 배 위에서 내리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그저 잔잔해지기만을 바랐다. '신은 버틸 수 있는 고난만을 준다던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원망스러운 마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남편은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는 도시락을 배달하고 낮에는 서빙을 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희망이라는 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도망치고 싶었다.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많이 지쳤고 도망칠 용기조차 부족했다. 그럴 때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바다가 생각났다. 답답함이 턱까지 차올라 숨 쉴 곳이 간절했다. 그 생각이 며칠, 몇 주를 지나며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 사방이 트인 섬, 제주. 우리는 제주행을 결정했다.
남편이 먼저 제주로 내려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던 집을 번번이 눈앞에서 놓쳤다.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불안함이 스며들었다.
제주의 서쪽 지역을 한참 살피며 좌절하고 있을 때 제주의 동쪽 함덕에 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유일한 조건인 ‘초등학교 가까이’를 만족시켜 주는 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운명 같은 집을 만나게 되었다.
2021년 4월 29일 우리는 서울을 떠나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 우리 집은 5층짜리 낮은 아파트, 꼭대기 5층 집이었는데 박공지붕에 층고가 높아 답답함이 없었고 세탁실 창문 너머로는 함덕 바다가, 베란다에서는 한라산이 보였다. 바다가 보이는 집이라니! 뻥 뚫린 하늘이라니! 불안했던 마음과 두려움은 잠시 사라지고 기대와 희망에 마음이 간질거렸다. 우리 집은 일 년 연세로 계약한 집이었는데, 마치 일 년 동안의 안정과 행복은 보장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여전히 해맑고 즐겁게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