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 못 한 비행기처럼 한참을 서성이며 허공을 빙빙 돌았다. 마침내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부터 제주는 한동안 맑음이었다. 따스함이 우울과 불안으로 뾰족해진 마음을 뭉근하게 녹여주었다. 처음에는 그냥 걸었다. 발길 닿는 모든 것들이 육지와는 달라 새롭고 흥미로웠다. 해결되지 않았던 고민은 햇살에 바싹 구워져 가루가 되고 바람에 사르르 날아갔다. 정체되어 무거웠던 마음을 이곳저곳에 나누어 털어냈다.
함덕에서 북촌으로 가는 올레길, ‘킁, 킁.’ 코끝에 청량하고 쌉싸름한 향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맑고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꽃내음 같은 상쾌한 허브향. 생각지도 못한 허브향에 반가워 미소가 지어졌다. 초록이 느껴지는 존재감 있는 향기에 발걸음을 멈췄다. 로즈메리였다. 로즈메리 향에 발걸음을 멈추고 나풀거리는 나비를 보고 멈추고,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빨강, 파랑 세모 지붕, 계절마다 다르게 피는 꽃, 노곤하게 빵 굽고 있는 고양이, 우연히 만난 말, 느리게 걷는 사람들, 다정한 말소리와 높낮이 다른 웃음소리,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 유쾌한 친구들, 부서지는 파도에 비치는 반짝이는 윤슬, 붉은 노을, 시원한 바람,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강아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빛바래지고 녹슨 창고마저 멋스럽게 느껴져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참을 앞만 보고 달렸던 바빴던 마음에 걸음걸음마다 쉼표가 되었다. 잠시 멈추고 불어오는 바람을 기꺼이 맞아본다. 살랑거리는 여름이 뿌려진 봄바람이 싫지 않았다. 바람 많은 제주. 바람이 지나가는 길만큼의 여유가 있다. 무거운 마음에도 숨 쉴 틈을 내어준다.
‘산책’.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제주라 다행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제주에 도착했던 그때는 일 년 중 가장 날씨가 좋은 시기였다. 바람도 햇살도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