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바다가 해 주는 말

by 김수니

육지에서도 나는 종종 바다가 보고 싶었다. 둘째 아이가 뇌전증을 앓고 나서부터 우리 가족의 활동 범위가 굉장히 좁아졌다. 예전에 지인들과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둘째 아이의 증상이 나타난 적이 있어서, 그 이후부터 여행은 어지간히 마음을 먹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컨디션과 루틴이 깨지는 것이 지극히도 무섭고, 겁이 났던 터라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조차 부담이었다. 나는 나대로 아이 둘과 복작거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바쁘게 일상을 보내다 보니 바다를 보러 갈 만큼의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 바다 보러 가고 싶어.’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이 가슴까지 턱턱 차올랐다. 바다를 보러 가는 일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이까짓 것을 못 하나 서러움도 차올랐다. 그런데 그땐 그랬다. 어떤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가릴 것 없이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었다. 그런 서러움들이 차곡차곡 쌓이니 속상함이 가득 찼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조심스럽게 살아야 할까?


“바다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 ‘제주’. 우린 큰 노력 없이도 바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바다와 마주했을 때 나는 바다 한가운데 깊은 바닥까지 한없이 가라앉고 싶었다. 깊은 바다 바닥 끝까지 가라앉으면 다시 발이 닿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입을 꼭 다문 채로 나는 조용히 가라앉았다. 빛도 어둠도 닿지 않은 고요한 시간.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바닥을 내딛고 다시 물 위로 올라왔다. 제법 씩씩하고 용감해진 기분이 들었다. 바다는 내 마음을 흘려보내기도, 가끔은 답해주기도 했다. 해안가를 지나가다 새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한참 바라보았다. 익숙하게 발걸음을 멈추고 기다리고 바라보고 흘려보낸다. 바다의 파도에, 물결에 그렇게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돌아오는 파도처럼 내 마음이 나에게 와닿는다. 나는 두려움을 내밀었다. 그리고 또 기다렸다. 바다로 돌아갔던 파도는 다시 내게로 와 두려움을 안고 돌아갔다. 두려움과 파도는 만나 새하얗게 부서졌다. 나는 가던 길로 돌아갔다. 그렇게 바다는 내게 말을 해주었다.


바닷냄새가 더 짙어지는 안개 가득한 제주 바다.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마셔 본다. 내 코끝으로 내 살갗으로 내 귓가로 바다가 가득 채워진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지 이곳으로 올 수 있을 만큼 내 안에 바다로 가득 채운다.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 안에 바다를 품어본다. 그렇게 바다는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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