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도 나는 종종 바다가 보고 싶었다. 둘째 아이가 뇌전증을 앓고 나서부터 우리 가족의 활동 범위가 굉장히 좁아졌다. 예전에 지인들과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둘째 아이의 증상이 나타난 적이 있어서, 그 이후부터 여행은 어지간히 마음을 먹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컨디션과 루틴이 깨지는 것이 지극히도 무섭고, 겁이 났던 터라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조차 부담이었다. 나는 나대로 아이 둘과 복작거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바쁘게 일상을 보내다 보니 바다를 보러 갈 만큼의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 바다 보러 가고 싶어.’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이 가슴까지 턱턱 차올랐다. 바다를 보러 가는 일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이까짓 것을 못 하나 서러움도 차올랐다. 그런데 그땐 그랬다. 어떤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가릴 것 없이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었다. 그런 서러움들이 차곡차곡 쌓이니 속상함이 가득 찼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조심스럽게 살아야 할까?
“바다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 ‘제주’. 우린 큰 노력 없이도 바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바다와 마주했을 때 나는 바다 한가운데 깊은 바닥까지 한없이 가라앉고 싶었다. 깊은 바다 바닥 끝까지 가라앉으면 다시 발이 닿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입을 꼭 다문 채로 나는 조용히 가라앉았다. 빛도 어둠도 닿지 않은 고요한 시간.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바닥을 내딛고 다시 물 위로 올라왔다. 제법 씩씩하고 용감해진 기분이 들었다. 바다는 내 마음을 흘려보내기도, 가끔은 답해주기도 했다. 해안가를 지나가다 새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한참 바라보았다. 익숙하게 발걸음을 멈추고 기다리고 바라보고 흘려보낸다. 바다의 파도에, 물결에 그렇게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돌아오는 파도처럼 내 마음이 나에게 와닿는다. 나는 두려움을 내밀었다. 그리고 또 기다렸다. 바다로 돌아갔던 파도는 다시 내게로 와 두려움을 안고 돌아갔다. 두려움과 파도는 만나 새하얗게 부서졌다. 나는 가던 길로 돌아갔다. 그렇게 바다는 내게 말을 해주었다.
바닷냄새가 더 짙어지는 안개 가득한 제주 바다.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마셔 본다. 내 코끝으로 내 살갗으로 내 귓가로 바다가 가득 채워진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지 이곳으로 올 수 있을 만큼 내 안에 바다로 가득 채운다.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 안에 바다를 품어본다. 그렇게 바다는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