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한 친구. “응, 나야.”로 시작된 친구와의 전화 통화. 몇 개월 만에 친구와 제법 긴 통화를 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우정을 나눈 내 절친한 친구는 5살 아들 쌍둥이 엄마이자 워킹맘이다. 각자의 위치와 환경 그리고 코로나까지 합세해서 우리는 전보다는 소원해졌다. 누군가의 방해 없이 대화에 집중하며 전화한 것도 너무 오랜만이었다. 두런두런 그동안의 안부를 나누는데 친구가 얼마 전 남편과 나눴던 이야기를 전했다. 그의 남편은 친구에게 하루 중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뭘 하고 싶은지 물었고, 친구는 제주도에 있는 다혜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마음이 찡하고 울컥 눈물이 났다. 날 그리워해 주고, 보고 싶어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든든했다.
비행기로 1시간이면 오고 가는 제주지만 가끔은 참 멀게 느껴진다. 매일 좋은 날일 것 같은 제주의 날씨는 변덕스러워 그렇지 않은 날들이 많다. 며칠 전부터는 장마처럼 계속 비가 내리고 흐렸다. 습한 날씨처럼 내 기분도 물먹은 스펀지가 되어 축축 처졌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한치 철이 끝난 건지 먼바다를 대낮처럼 밝히던 한치 배는 없고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바다가 사라져 버렸다. 바다는 사라지고 캄캄한 어둠만 있으니, 바다 건너 내 세상도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리움도 어둠 속으로 사라져 닿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 얼마 전 보고 싶었던 친구가 다녀갔다. 잊혔던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외롭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애써 외면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제주도 하늘에서는 비를 쏟아붓고 바람도 거센데 서울은 파랗고 맑다고 했다. 새삼 먼 거리가 현실이 되어 외로움이 증폭되는 찰나 우편함에 익숙한 이름, 익숙한 글씨체의 편지가 보였다. 가볍게 건넨 안부와 농담 뒤로 ‘너의 마음은 잔잔한 바다 같아졌니?’ 물어주는 친구의 편지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외로움이 순식간에 썰물이 되어 사라졌다. 금세 온기와 따스함이 스며들어 웃음이 났다. 바다를 건너온 사랑은 유독 농도가 짙다. 그 사랑에는 당연한 것이 없다. 멀고 긴 거리를 넘어온 수고스러움과 쉽게 닿지 못한 애잔함, 걱정하는 마음이 녹아 농도가 짙고 짙어져 어지간해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짙고 짙어진 마음은, 사랑과 감사가 되어 나를 채웠다. 더 이상 제주는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섬이 아니었다. 짙어진 사랑이 증폭되는 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