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귤 나라는 귀여워

by 김수니

날씨가 차가워지고 화창한 날보다는 흐리고 스산한 날들이 많아졌다. 차가워진 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살결에 찬바람이 닿을까 옷을 여민다. 바람에도 소리가 있다.

‘우-우-,윙-윙-’. 내 귓가에서 바람이 머무는 계절이었다. 색깔로 치면 그레이지, 그레이(Gray)와 베이지(Beige)의 합성어인데 회색과 베이지의 중간색 같은 이 계절이 나는 싫다. 아주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애매한 계절의 모호함이 나는 불편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던 이 계절에 제주에서 내 마음을 빼앗은 것이 있었다. 고운 주황빛으로 영글어져 주렁주렁 달린 귤이다. 귤밭을 지나면 귤밭, 귤밭을 지나고 나면 또 귤밭, 주황빛 에너지가 나를 채운다. 내가 싫어하던 이 애매한 계절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글동글 주황 귤들의 계절이었다.


귤 나라, 귤의 계절의 오후 다섯 시. 오후 다섯 시쯤이 되면 오렌지빛으로 세상이 덮인다. 동그랗고 붉은 해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 호기롭게 태양을 마주하고 길게 늘어진 빛과 그림자의 하모니를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리어카를 발견했다. 정말이지 제주에서는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함덕에서 중산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우연히 발견한 ‘감귤 무인 판매대’. 그물망 옷을 걸치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황색 귤들은 그림책에 나오는 귤 형제들처럼 너무 귀여웠다. 짧은 찰나 내릴까 말까 고민하다 차를 정차했다. 꼬깃꼬깃 접힌 천 원을 예쁘게 펴서 셀프 수납함에 넣고 귤 망 하나를 들었다. ‘이히히. 이게 뭐라고 이렇게 귀여울 수가’ 이 모든 상황을 귀여워하는 나도 귀엽게 느껴져서 웃음이 났다. 역시 귀여운 건 질리지 않는다. 귀여운 귤 그리고 귀여운 나.


노오란 귤을 노릇노릇 굽는다. 화로 곁에 둘러앉아 구운 귤을 먹는 모습이 낯설지만 궁금하고 재밌다. 노릇하게 구워진 귤을 군고구마 먹듯 호호 불며 껍질을 까고 조심스럽게 귤 한쪽을 입에 넣었다. 귤 특유의 산미는 부드럽게 누그러져 따뜻해진 과육의 달큼함은 커지고 과즙도 많아져 꿀꺽 잘 넘어간다. 얼었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고 따뜻함이 채워진다.


‘겨울은 싫다’라며 단정 짓는 나에게 그럴 이유가 없다며 매일 다른 매력으로 나를 꾀는 제주의 겨울. 어떤 색을 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레이지의 계절.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그레이지 색과 지금 나의 계절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레이지색 덕분에 주황빛 귤은 더 따뜻하고 생기 있게 빛난 건 아닐까 싶었다. 기왕이면 나도 나의 이 계절을 에너지 가득한 노랑 주황 귤처럼 상큼 달큼하게 채워봐야지. 귤 나라의 이 사랑스러운 계절을 언젠가는 그리워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머문 이 계절도 언젠가는 마음속에서 달콤하게 익어 그리운 날이 되겠지.

이전 05화5. 슬기로운 제주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