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 숙종 Jan 09. 2019

7. 양들은 침묵한다.

       

 양들은 침묵한다.   

  

 겨울이 끝나면, 들판에 태양만 있고 풀이 없기 때문이다. 비는 겨울 시즌에 억수로 내리고 다음 겨울까지 오지 않는다. 겨울에 내린 비로 나무들은 한해를 산다. 양은 무진장 많고, 여름인데도 비가 오지 않아 먹을 풀이 없는 땅이 요르단이다. 푸름이 없는 사막에서 양들은 쓸쓸하다. 뭔가를 뜯고 있는데 풀은 보이지 않는다.

 ‘돌 틈새에 마른 싹이라도 있을런가?’      


 8월의 요르단은 햇빛뿐이다. 어제 요르단 수도 ‘암만’은 올해 최고 기온을 찍었다. 암만 시내에 설치된 온도계는 52°를 가리키고 있었다. 10년 이래 최고 기온이라고 한다. 웬만한 더위는 적응을 잘하는 편이지만, 퇴근할 때 정말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은 햇빛으로 눈이 시렸고, 바람조차 태양에 말랐다. 터덕터덕 걷는 내 옆을 검은 ‘차도르(눈을 제외하고 전신을 가리는 옷)’를 뒤집어쓴 여자들이 조용히 지나쳤다.     


 비가 그립다. 이젠 비가 오더라도 우산 없이 비를 맞고 다닐 수 있다. 요르단 첫 겨울 시즌에는 비가 자주 왔다. 외출 할 때 불편해도 접이식 우산을 배낭에 꼭 넣고 다녔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현지인들은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을 뿐더러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고 다닌다. 요르단 사람들이 비를 맞고 다니는 이유가 있다. 이들에게 비는 축복이고 1년을 기다린 희망이다.  


 비가 많이 오면 요르단은 휴일이다. 나는 문화부에 파견되어 봉사활동을 한다. 비 오는 날 발목까지 잠긴 고인 물을 피해 문화부에 도착하니 현관문이 닫혀있다. ‘뭔 일인가?’ 30분을 기다렸다. 시설 관리인이 와서 오늘 휴일이라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이정도 비에 휴일이라니?’

 ‘나라전체가 공휴일이면 일은 누가 하나?’     


 수도인 ‘암만’에도 비가 조금만 와도 물난리다. 빗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 저지대 길과 주택골목은 연못이 된다. 배수 시설이 전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겨울 한철 오는 비 때문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배수시설을 할 수 없다. 그저 비가 오면 공휴일로 지정해서 물난리에 대비한다. 그것이 경제적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비보다 눈이올 때 공휴일이 잦다. 눈은 조금만 와도 공휴일이다. 아니, 기상청에서 눈이 올 거라는 예보만 해도 공중파 TV는 휴일을 공표한다. 

 “오늘 눈 예보가 있어 학교를 비롯한 모든 공공 기관을 공휴일로 지정합니다.”

 이런 자막을 TV에서 보고 시민들은 출근하지 않는다. 난 집에서 TV를 보지 않기에 여러 번 출근했다가 돌아오곤 했다. 여기엔 스노 체인도 없고 제설재를 뿌리는 일도 없다. 눈이 오면 도로가 미끄럽기 때문에 택시 외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요르단 첫 겨울, 눈 때문에 일주일 넘게 공휴일이 된 적도 있었다. 이들은 눈이 올 때 제설재로 뿌리며 악착같이 출근하게 하는 한국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집에서 쉬게 하지, 왜?”

 나는 공휴일이 많은 요르단이 맘에 든다.     


 요르단에서 지정되는 공휴일 수는 한국의 3배는 되는 것 같다. ‘라마단’ 축제, 국왕 생일 등, 비나 눈이 오는 이외의 날도 걸핏하면 휴일이다. 출근해도 일하는 시간보다 기도하는 시간, 차 마시며 수다 떠는 시간이 더 많다. 무슬림은 의무적으로 하루 5번 기도한다. 시간을 정해 단체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시간대에 개인별로 알아서 하면 된다. 일을 하다가 적당한 시간에 화장실 가서 세면을 한 후 양탄자를 깔고 기도한다. 남자는 주로 사무실에서 하고, 여자는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한다. 5분정도 걸린다. 기도하는 시간에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문화부 장관도 비서가 기도하는 중이라고 하면 찾지 않는다. 남녀가 나뉘어서 각자 기도하는 이런 직장에서 일의 능률을 기대하긴 어렵다. 


 모든 공공기간은 8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에 퇴근한다. 장관이 비서보다 먼저 출근하고 먼저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비서가 정시 출퇴근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퇴근 10분전에 모두 버스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죽기 살기로 일하는데 이곳엔 그런 사람이 없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만들고 쓰는 활동을 경제라고 한다. 경제 논리를 무색하게 하는 나라다. 만드는 사람은 없고 쓰기만 하는 나라가 요르단이다. 경제를 이끌 성장 동력도 없으면서 일조차도 안한다.     

 문화부 친구에게 이해 할 수 없는 요르단 경제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공공기관 직원들이 일찍 퇴근하고, 휴일도 많은데 어떻게 국민이 먹고 살지?”

 “나도 그것이 궁금해? 흐흐” 

 “정부도 돈이 있어야 국민을 통치 할 수 있을 텐데?”

 “미국과 사우디에서 돈을 빌려와서 쓰고 있어.”

 “그럼 그 돈은 어떻게 갚아?”

 “한 번도 갚은 적이 없어, 그냥 빌리기만 해. 하하”      


 요르단은 중동국가 중에서 대표적인 미국 우방국이다. 매년 10억 달러이상 경제·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요르단을 제외한 주변 국가들은 산유국으로 잘 살고 있다. 왜 요르단에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인접 국가는 석유가 넘치는데, 요르단엔 왜 석유가 없는 거야?”

 “땅을 파면 나올 거야. 그런데 정부가 안 하는 거야.” 

 “아니 왜? 나라가 부자가 되는데?”

 “몇 년 전 중국 기업이 ‘아카바(요르단 남부, 사우디 인근지역)’에서 석유 사업을 

 하고 수익금 50⁚50을 요청했는데 정부가 거절했어.” 

 “어째, 그런 일이? 수익금 배분 문제 때문에?”

 “아니, 석유가 나면 미국과 사우디에서 공짜로 돈을 빌려올 수 없어서 석유 사업을 

  반대하는 거야.”

 “미국과 사우디에서 빌려오는 돈은 어디에 쓰는 거야?” 

 “70%는 국민들을 위해 쓰고, 30%는 국가 관리들 주머니에 들어가는 거야.” 


 놀라운 일이다. ‘절대적 믿음으로 무장된 무슬림들에게도 이런 비리가 있다니?’ ‘결국 종교와 사회질서는 별개의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는 덧붙였다. 

 “그러니 정부가 왜 석유 사업을 하겠어, 그들한텐 지금이 젤 좋은데.”    


 나는 믿을 수 없어 크게 말했다. 

 “근데 왜? 국민들이 가만있어?”

 “그냥 침묵하는 거야!” 

 “......”       




매거진의 이전글 6. 알 수 없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