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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09. 2019

6. 알 수 없는 일

    

 “오늘은 출근하지 말라”는 문자가 왔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침대에서 늦게 일어나는 것은 좋지만, 출근해야 직원들한테 공짜로 아랍어를 배울 수 있다. 그녀는 가끔씩 이런 문자를 내게 보낸다. 본인이 일이 있거나 휴가 때면, 나보고 출근하지 말란다. 그녀가 없을 때 내가 다른 직원과 친해지면, 그 직원이 나를 데려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개인 비서임이 틀림없다.     


 나는 해외봉사단원으로 요르단으로 파견되었다. ‘영상 미디어’ 직종으로 문화부에서 사진작가 일을 하고 있다. 요르단은 한국과 달리 예술가 보다는 엔지니어를 높게 평가한다. 엔지니어는 아랍어로 ‘무한디스’다. 엔지니어 출신인 사람을 아예 무한디스(Engineer)라고 호칭한다. 나는 방송국 엔지니어 출신이라 재직시절 홀대 받았는데, 여기 와서 예술을 한다하니 또 홀대한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은 안 되나 보다. 나는 개인 책상도 없이 그냥 그녀 방에서 앉아 있다가 그녀가 시키는 일만 한다. 그녀가 나를 독점했다.     


 그녀 이름은 ‘하난(45)’이다. 뚱뚱하고 얼굴이 커서 행사 사진 찍을 때 각도를 잘 잡아야 한다. 방송국 시절 전두환씨가 대통령이 된 후 보도국 카메라 팀에 특명이 내려졌다.

 “무조건 앞에서 찍어라! 절대 ‘전통(전두환 대통령)’ 뒤에서 찍으면 안 된다.”

 ‘땡전뉴스(9시 땡! 하면 전두환 대통령 뉴스를 의무적으로 시작해서 붙여진 이름)’ 때 그의 뒷대머리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이 얼굴 크게 나온 사진을 아주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그녀를 찍을 때마다 신경 쓰였다. 그녀가 나를 원해서 요르단으로 파견됐고, 문화부에서 일하게 됐다. 그게 고마워서 나는 열심히 그녀를 찍었다. ‘하난’은 문화부 대변인이다. 문화·예술·언론 등을 총괄하는 업무라 영향력이 있다. 수행비서인 나도 나름 폼을 잡는다.

    

 회의 때문에 1시간 후에 온다던 그녀가 10분 만에 왔다. 문을 열고 여태껏 안하던 모습으로 문에 기대서 나를 한참 보고 있다. 술 취한 사람모양 눈에 초점이 없었다. 이상해서 가까이 가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 피곤해.”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는 바닥에 쿵! 쓰러졌다. 손쓸 방법이 없다. 육중한 몸 때문에 그녀를 일으켜 세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슬림 여자 몸을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바닥에 둘 수 없어 급히 직원들을 불렀다. 직원 셋이 뛰어왔다. 그녀를 소파에 눕혀 얼굴에 물을 뿌리고 흔들어주니 의식이 돌아왔다.  

  

 ‘하난’이 쓰러진 이유를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은 아는 것 같았다. 무거운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가서 응급실에 눕혀놓았다. 따라온 직원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어 봤다.

 “오늘 회의에서 장관이 ‘하난’을 다른 곳으로 발령 냈어요.”

 “그 충격으로 쓰러졌군요?”

 “그런 것 같아요.”

 “어디로 발령 났나요?”

 “아마, 문화 센터(Royal Cultural Center)로 갈 것 같아요.”    


 ‘하난’은 문화부에서 아웃사이더였다.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 자리를 뺏길지 모른다. 그녀는 원래 초등학교 교사였다. 4년 전 문화부가 주관하는 행사에서 그녀가 사회를 맡았다. 그 자리에 있던 문화부 장관이 그녀를 스카우트했다. 외부에서 들어와 대변인 자리를 꿰찬 그녀를 동료들은 못마땅하게 여겼을 게다. 

 ‘그래서 그녀는 내게 집착했을까?’

 나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방을 나갈 때 다른 사람이 책상 위에 있는 서류 등을 보지 못하도록 주의시켰다. 그녀는 혼자서 많은 일을 떠안고 밤늦도록 일했다. 그것이 장관한테 신임 받는 유일한 길이었다. 결국 신임을 잃은 충격으로 그녀는 쓰러졌다.     


 무슬림 국가인 요르단이 한국과 꼭 같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 직장이었던 MBC도 이기주의와 파벌주의로 명성이 높은 회사였다. 대통령이 바뀌면 파벌도 바뀌는 주인 없는 회사였다.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을 가르는 알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난 포기하고 아웃사이더로 묵묵히 있었다. 그러다 결국 아웃사이더로 퇴직했다. MBC만 국한된 얘기가 아닐 게다. 한국은 정치와 사회가 너무 일그러져 있어 살기 고달프다. 

 이곳 요르단은 동료들과의 시샘은 있지만 따뜻하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지 못해 안달한다. 직원이 교통사고가 나거나 집이 무너져 수리를 해야 할 때, 누군가 기부 리스트를 만들어 온다. 나도 3만원씩 두 번 냈다. 얼마 안 되는 돈이겠지만, 물방울 같은 돈이 모여 받는 사람의 가슴을 출렁이게 할 것이다.   

  

 ‘하난’는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다. “오늘은 출근하지 말라”는 문자를 내게 보내지 않고 결근한 것은 처음이다. 다른 직원한테 물어보니 통원치료로 이번 주 통째로 휴가를 냈다고 한다. 그녀가 없는 빈 사무실을 혼자 쓰니 편했다. 서류가 겹겹이 쌓였던 그녀의 책상엔 서류대신 침묵이 쌓여갔다.

 그녀는 출근해서 점심도 굶은 채 쉬지 않고 일만 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곤 늘 책상에 있었다. 나와 ‘하난’은 문화부에서 가장 늦게 퇴근했다. 나라도 먼저 가라고 하면 좋을 텐데? 말이 없다. 퇴근시간이 지난 것도 모르는 것이다. 처음엔 짜증났으나 포기했다. 퇴근 할 때도 못 다한 일을 잔뜩 싸가지고 집으로 갔다. 주로 문화부 홍보자료를 검토해서 잘못 쓰인 문장을 수정하는 일이었다. 지켜보는 내가 안쓰러워 조금만 쉬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오늘 반드시 끝내야 해! 장관이 이 서류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했다. 그녀가 죽자고 했던 일을 지금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다. 혹시 다른 사람이 대신하고 있는지 여러 사무실을 돌아다녀봤다.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가 하던 일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일주일 내내 그녀의 휴가가 이어졌지만, 무심하게도 문화부는 아무 일 없는 듯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까지 ‘하난’은 무슨 일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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