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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09. 2019

13. 택시 운전사

  

 천국을 이상적이라고 하면 너무 멀다. 그저 맘 편한 곳이라 하자. 


 요르단에도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몇 개 있다. 골목을 맘 놓고 어슬렁이는 ‘고양이 천국’, 공부 안 해도 가문이 취업시켜주는 ‘가문의 천국’, 4명 신부를 눈치 안보고 맞이하는 ‘결혼의 천국’ 그리고 ‘택시타기 천국’이다.     


 요르단에 와보면 택시 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왜, 택시타기 천국일까? 택시가 럭셔리 하거나, 운전수가 친절해서가 아니다. 택시요금이 싸기 때문이다. 요르단 택시비는 한국의 버스비보다 싸다. 1,600원이면 가까운 거리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다른 물가에 비해 택시 요금이 싼 것은 정책적 배려일지도 모른다. 

 요르단 수도인 ‘암만’에는 전동차량조차 없다. 대중교통이 얼마 없다보니 시민들이 택시를 많이 이용한다. 시민의 발과 같은 택시 요금이 비싸면 국민들이 불평할 것이고, 정부는 부담이 될 것이다. 그래서 택시 연료인 LPG 가격을 정부가 통제해서 택시 요금을 낮춘다. 취사용이나 가정용 난로에도 LPG 통을 쓰는데, 만 원짜리 한통이면 3개월 이상 사용한다.


 주식인 빵이 지나치게 싼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필품 값이 싸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받는 월급 50만원으로 6~8명 식구들이 살 수 있다. 이 돈으로 아이들 공부 시키고 휴대폰 요금내고 차도 끌고 다닌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도 자주 택시를 탄다. 요금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걸어서 20분 정도 가는 출 퇴근 길을 제외 하고는 늘 택시를 이용한다. “싼 것이 비지떡”이라는 속담은 요르단 택시를 타보면 알게 된다. 우선 운전수가 불친절하다(운 좋으면 친절한 운전수를 만난다). 차 내부가 지저분한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난폭 운전은 경주용 차를 탄 듯 불안하다. 


 나는 세상에서 요르단 택시 운전수가 가장 운전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네 가지를 동시에 하는 사람들이다. 운전하면서(그것도 난폭 운전?) 담배 피고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끝없이 누군가와 통화한다. 이렇게 혼을 빼 놓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택시 요금을 높게 부르는 것이다. 아랍어로 운전수에게 따질 수준이 안 되던 시절 나도 많이 당했다. 봉사단원으로 요르단에 막 파견되었을 때, 택시 타기는 공포였다.     


 이들 수법은 뻔하다. 택시를 타면 “미터기가 고장 났다”고 말한다. 이건 요금을 두 배 받겠다는 심보다. 주행 중 계속해서 말을 건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 난 한국을 좋아 한다. 한국 자동차 성능이 좋다.” 이렇게 친절한 척하는 운전수는 먼 곳으로 돌아가거나 아님 미터기를 조작해 둔 것이다. 처음 요르단에 파견되면 택시 운전수한테 사기 안 당하는 법을 배운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막상 택시를 타보면 운전수가 한수 위다.     

 

 택시를 타고 가다보면 길가에 택시를 세워둔 채, 양탄자 위에 엎드려 ‘알라’ 신에게 기도하는 운전수들을 자주 목격한다. 천국과 지옥이 함께 있다. ‘알라’에게 ‘올바르게 살겠다.’고 기도한 후, 택시로 돌아와선 어리바리한 승객들에게 바가지 씌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생활이 버겁다는 얘기다. 그만큼 택시 운전은 요르단 사람들 생업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운전수 엉덩이를 발길로 냅다 차주면 된다. 해코지 하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을 납치하는 커다란 사건은 요르단에 없다. 그들은 구걸할망정 절대로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다. 커피숍에 지갑을 두고 나왔다가 돌아가 보면 그 자리에 있다.     


 난 요르단에 와서 돈보다 휴대폰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요르단에서 생활한 모든 것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다. 특히 이제까지 공부한 아랍어 자료들은 모두 휴대폰에 정리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 썼다. 휴대폰만 있으면 현지인과의 대화가 두렵지 않았다. 이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공부한 모든 아랍어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그래서 휴대폰이 안보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밤길에 귀신을 만나도 이보다 더할까?     


 내 휴대폰이 없어진 사실을 안 것은 학원 선생과 수업을 막 시작할 때였다. 호주머니에도 없고 가방을 뒤져도 없었다. 분명 택시에 빠뜨린 것이다. 망했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부러지듯 정신이 뚝 꺾였다. 뒷일이 정리가 안 되고 머릿속이 멍했다. 2년간 저장된 현지 친구 전화번호와 뼈 빠지게 공부한 아랍어 문장이 휴대폰에 모두 들어 있다. 무엇보다 매일 수업한 내용을 학원 선생이 녹음해 준 파일 수백 개를 몽땅 잃었다.   

  

 ‘라잔’ 선생은 “걱정 말아요!”하며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내 번호를 눌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전화가 연결될 리가 없지?’ ‘누가 돌려주겠어!’

 요르단에서 한국산 스마트 폰을 사려면 월급의 반을 투자해야한다. 학생들에겐 꿈같은 일이다. ‘라잔’은 계속 전화했다. 난 속상해서 뒤돌아서 창밖을 내다봤다. 어차피 오늘 수업은 틀렸다. 2년간 죽어라 정리해서 저장한 자료가 불시에 날라 갔다. 휴대폰 없이 수업하기 어렵거니와 더 이상 아랍어 공부는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세상에!’ 일곱 번쯤 연결을 시도한 끝에 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라잔’이 물었다.

 “전화 받는 분은 누구세요?”

 “난 교통경찰입니다.”

 “그 전화기 잃어버린 건데요?”

 “네. 택시 운전수가 나한테 맡겨 뒀어요.”        


 같은 단원인 ‘히바(미술교육)’는 택시에 거금 50만원이 든 지갑을 두고 내렸다. 요르단에서 50만원은 엄청 큰돈이다. 코이카 본부는 분기별로 생활비를 요르단 은행 계좌로 입금해 준다. 이날 그녀는 집세와 한 달 쓸 돈을 은행에서 막 찾은 돈이다. 요르단은 모두 현금 거래다. 까맣게 모르고 집에 와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지갑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때야 지갑이 없어진 걸 확인한 그녀는 화들짝 놀라 물었다. 

  “누구세요?”

  “택시 운전삽니다.”

  “어떻게 제 번호를 알았어요?” 

  “지갑 안에 병원 영수증이 있어, 그 곳에 전화해서 알아냈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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