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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09. 2019

12. 용서하소서!

                                                                                    

 무장 병력이 있는 세 번째 출입문까지 왔다. 신분을 확인한 보안요원이 철조망 문을 열었을 때. 수 만 개 컨테이너 위에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허리우드 영화사가 지어 놓은 세트장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컨테이너(이동식 주택)에는 시리아 난민 9만 명이 살고 있다. 마른 땅위에 다닥다닥 붙은 성냥갑 같은 창고가, 낮은 언덕을 따라 들판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가슴 아픈 현장이 숨을 멈추게 했다. 현실의 땅이 아닌 잊을 수 없는 곳. ‘자타리(Zatari) 난민 캠프’였다. 이 캠프는 요르단 북쪽 도시 ‘마프라크’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인 시리아 난민 수용소다. 시리아 국경에서 불과 15㎞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시리아 내전 발발 직후 난민이 무더기로 국경을 넘자 요르단 정부가 2012년에 조성했다.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난민 캠프가 되었다.  

   

 철조망 바깥은 꽃이 한창인데, 이곳엔 꽃이 피고 지는 언덕이 없었다. 

 봄이 세 번 다녀갔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아랍어로 “안녕!(마르하바)”이라고 써놓은 컨테이너 사이에 걸린 따뜻한 빨랫줄을 따라가면 골목이 나온다. 그 길 끝에 또 다른 컨테이너 골목이 언덕으로 이어지지만, 언덕에 꽃은 없다.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그 언덕을 내려오고, 물탱크 차가 먼지를 흩뿌리고 지나간다. 한 뼘 남은 해는 꽃 없는 언덕을 비추다가 노을과 함께 진다.   

   

 ‘서울은 봄꽃이 한창 일런가?’ 

 국회의원 후보들이 지나가는 사람 없는 길 위에 엎드려 큰 절을 하는 가엾은 봄날. 나는 시리아 난민촌에 세 번 들어갔다.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려고 만든 ‘시네마천국’ 활동 때문이다. 다음 행사를 이곳에서 꼭 하고 싶었다.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지역이라 봉사활동을 하려면 유엔난민기구(UNHCR) 승인이 나야 했다. 

 그들은 ‘자타리’ 캠프의 비참한 현실이 세계 언론에 공개되는 것에 무척 예민하다. 활동 취지와 출입자 신원을 보내는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섭외가 힘들었다. 아이들에게 한국영화를 보여주고, 봉사단원과 하루를 뛰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려고 답사를 온 것이다.    

 

 어느 난민 가족이 우리 팀을 초대했다. 밀폐된 컨테이너 안에는 천정에 매달린 전구 하나, 낡은 TV 한 대, 옷과 이불 등을 가렸을 커튼이 걸려 있었다. 이웃 주민과 동네 아이들 수 십 명이 우리를 빙 둘러앉았다. 나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훨씬 많은 이유가 궁금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난민 캠프에서 살려면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합니다.”

 UN 난민 보호 단체로부터 월 4만5천원 생활비를 가족 수 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50명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는 난민촌 사람들은 씨를 뿌려 꽃을 피울 봄이 없다. 오늘처럼 내일이 오고, 그 건조한 내일에 아이들이 꽃보다 아름답게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아이들에게 무슨 선물이 좋으냐고 묻자 하나같이 말한다. 

 “한국 초코파이가 제일 좋아요!”

 어떻게 초코파이 명성이 이곳까지 알려졌을까? 놀랍고 뿌듯했다. 

 ‘그래, 너희들이 꽃은 볼 수 없어도 초코파이는 먹을 수 있을 거야!’

 초코파이 250명 분량을 구하려고 암만(요르단 수도) 대형 마트를 찾아다녔다. 한곳에 초코파이가 있었지만 10명분뿐이었다. 일주일 후에 마련해 놓겠다고 해서 다시 갔다. 한 박스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지배인은 일주일만 더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그의 약속을 믿었으나 그나마 남아있던 것 모두 없어졌다. 마지막 방법이었다. 한국 초코파이 본사에 250명분을 보내 달라는 메일을 썼다.    

 

 “‘자타리 난민 캠프’를 아시나요? 시리아 전쟁을 피해 넘어온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그곳 아이를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학용품보다 초코파이를 더 원합니다. 요르단에서는 250명 분량을 구할 수 없어 부득이 오리온 본사에 메일을 보냅니다.”

  (이번 행사에 관련된 ‘시네마천국’ 활동 계획서를 첨부 합니다.)  


 바로 답신이 왔다.     


 “오리온 제품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리온에는 개인 협찬 관련 프로그램이 없어 

  도와드리지 못한 점 양해바랍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된 오리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희망은 사라졌다. 시리아의 눈물 같은 아이들 희망이다. 초코파이로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려던 기대가 무너졌다. 이제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나? 어떤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슬픔을 달랠 수 있을까? 행사 일주일 전부터 나는 몹시 뒤척였다.    

  

 난민촌 아침. 태권도 학교 강당에서 행사가 시작됐다. 시네마천국은 야외에서 영화를 보여주는 행사다. 그러나 ‘자타리’ 캠프에서는 야간 활동을 할 수 없다. 영화를 보려면 어두워야 하는데 유엔난민기구에서 승인해 주지 않았다. 필드에서 수백 명이 깜깜한 밤에 모이면 아이들이나 시네마팀원들이 위험하다는 이유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과 지붕을 담요로 일일이 덮었다. 밤에만 전기가 들어오기에 발전기를 돌려 전원을 공급했다. 250명 아이들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장소가 좁아 행사에 초대 받지 못한 난민촌 아이들은 철조망 밖에서 행사가 끝날 때 까지 서성거렸다.    

 

 해가 ‘자타리’ 캠프 중천을 넘어설 때 시네마천국 활동은 끝났다. 게임을 하고 사물놀이, 난타를 공연했다. 마지막엔 만화영화와 함께 아이들이 난민촌을 뛰어다니는 영상을 보여줬다. 초코파이 없이도 아이들은 즐거워해줬다. 우리 팀은 그 아이들과 섞이어 쉼 없이 뜀박질 했다. 온통 땀으로 보낸 하루였다. 

 답사 가서 찍은 아이들 영상을 편집하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미리 카메라에 담아온 아이들 영상을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Ave Maria)’ 곡에 입힐 때. 나는 꽤 눈물을 흘렸다. 꽃이 없는 봄 언덕을 오르내려야 하는 난민촌 아이들. 전쟁이 끝나야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기약 없는 기다림. 그들에게 바깥은 없는 세상인 것 같았다.  

  

 정작 행사 당일은 슬프지도, 난민촌 아이들이 가련하지도 않았다. 프로그램을 만든 우리보다 아이들 목소리가 더 크고 쟁쟁했다. 그들이 ‘자타리’ 언덕에 피는 꽃이었다.

 어른들이 만든 꽃이 없는 봄 언덕에서, 아이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 같았다.

 ‘아베 마리아’ 기도를.    


 “성모 마리아여! 우리 어른들을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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