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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08. 2019

1. 들어서며

  [수학점수]   

 

 숲이 어두웠다. 자주 안개가 땅에 깔렸다. 너무 어두워 등불을 켰다. 등불이 자꾸 꺼졌다.  숲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과 함께 있지 못하고 나는 떠나고 있었다. 숲길이 이리저리 얽혀있어 길을 찾지 못했다. 내가 숲에서 나왔을 땐, 정확히 58년이 지난 후였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운이 없었을 뿐이다. 어머닌 글씨를 읽지 못하셨으니 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아버진 글씨는 쓰실 줄 아시니까, 학교를 어느 정도 다니셨을 거다. 그런 부모님이 아들이 가야하는 길을 알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 잘못도 아니다.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나를 숲으로 보냈다. 국어과목보다 수학점수가 높다는 이유로 나를 이과 반으로 보냈다. 그래도 그분 잘못은 아니다. 운이 없었다. 문과로 가야할 사람이 이과로 갔으니 길이 위태로웠다. 나는 수학이나 물리과목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외우고 있었다. 4수까지 했으나 대학을 못 갔다. 제대 후 다시 이과 과목을 외워서 간신히 대학은 다녔다.      


 취업이 잘되는 시절에 졸업했다.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 방송기술로 30년을 버텼다. 퇴직 기념식에 가지 않았다. 창피했기 때문이다. 다른 동료들보다 늘 승진이 늦었다. 늦게 대학을 나와 동료들 중 나이는 가장 많았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직장 상사를 원망했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운이 없었다.  

    

 틀린 길이었다. 너무 멀었다. 어둔 길을 헤맸다는 것을 안 것은 회사를 나와 서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해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알았다. 고등학교 때 문과 반에 앉아있어야 했다. 바로 옆 반이었는데, 수십 년을 등불을 켜고 다녔다. 어둠은 밖의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것이었다. 나도 나를 모르고 살았다. 수학점수가 높다는 이유로 숲길로 가서, 여기까지 오는데 거의 60년이 걸렸다.   

  

 이제라도,

 여행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남겨진 시간이 20년 아니, 10년 정도 될까?’    


                        

 [붕어]    

 ‘돌아온 지 한 달도 채 안되는데?’ 

 아내는 닦달한다.

 “글이라도 쓰지 맨날 방에만 있냐고……?”


 내가 3년 6개월을 여행하면서 쓴 돈이 아까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난 빈 손으로 돌아왔다.

3년을 ‘코이카(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요르단에 있었다. 나머지 기간은 배낭 하나로 9개국을 쏘다닌 귀로여행이었다. 긴 날들 완벽하게 책 한 권 읽지 않은 내게 “책을 쓰라”며 떠미는 건, 상처를 건드려 피를 흐르게 하는 것이다.    


 몸은 시차로 침묵하고, 마음은 침대 위에서 지금도 여행 중이다. 세상을 떠돌다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온 사람 마냥. 눈만 감으면 길이 보였다. 패인 길 위에 고인 빗물을 철퍼덕 철퍼덕 물탕 튀기며 걸었다. 계절이 지나쳤다. 꽃이 피고 졌다. 숲에선 아직도 새들이 푸드덕 난다.      


 밥이 몸속에서 에너지를 만들 듯, 책을 읽어야 문장이 생성된다.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선 펌프 속에 물을 붓 듯. 글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마중물이 필요했다. 글을 쓰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런 문장의 순리가 가슴을 꾹꾹 눌러 나를 밖으로 내몬다.     


 일주일 만에 밖에 나왔다. 그새 봄꽃이 폈다.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피는 것 같다. 초록이 피고, 잎이 피고, 꽃이 핀다. 아파트 단지에서 도서관까지 온통 꽃길이다. ‘물푸레 연못’이라고 쓰인 팻말 앞에 떼 지어 있는 민물 붕어를 내려다본다. 연못가에 몰려든 책가방을 멘 꼬맹이들이 과자 부스러기를 연못에 던진다.  

   

 내가 여행에 중독되듯, 붕어들도 바깥 세상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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