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비 Feb 09. 2019

와인 한 잔만 더 하자면서

천국이자 낙원이자 지옥 같은 이 곳

"그럼 딱 한 잔만 더 할까?!"


이번 에는 포르투 여행 사진들로만. 근데 사진마다 와인 병이... 저녁이니 와인이지 하며 레드와인 한 병!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곧 한 병 된다. "한 잔만 더 할까?!"라는 말에는 "한 병만 더 마시자!"라는 말이 은근슬쩍 깔려 있는 셈이다.


나와 아내 모두 술이 센 편은 아니다. 소주를 기준으로 그녀는 두 잔 정도고 나는 한 병 정도다. 둘 다 술을 좋아하지만 어디 가서 "하하하! 저희 술 좀 합니다!"라고 명함 내밀 수준은 아니다. 또 아내는 소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여기서 한국에서 술을 즐기기에는 크나큰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맥주와 막걸리는 "넘나 좋은 것!"하기 때문에 우린 주로 이 둘을 탐했다. 그래 봤자 그녀는 맥주 500cc 한 잔을 다 비우지 못해 내가 마저 끝내고는 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우린 술을 즐기기는 했지만 그다지 많은 술잔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소주를 마실 수 없었고 다른 걸 마셔도 많아야 맥주 두 잔 정도였다. 그녀와 술을 마시면 난 한상 "아... 조금 아쉬운데...?"를 느꼈다. 


근데 파리에 오고 나니 그녀의 알콜욕을 옭아맸던 고삐가 풀려도 너무 풀렸다. 이곳에서 그녀의 취향을 저격하는 술을 찾았다. 바로 와. 인. 물론 그녀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건 한국에서도 알았다. 다만 한국에서 와인이 많이 대중화되었다고 해도 일상적으로 즐기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편의점에서도 팔지만 종류는 한정적이었고 솔직히 말해 맛도 그다지 이었다. 큰 마트나 백화점에 가야 하는 데 집 앞 마트도 아니니 늘 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탓도 있었지만 그나마 마실만한 와인을 사려면 적어도 2만 원대는 했어야 했다. 솔직히 싸지는 않다. "귀찮은데 맥주나 마시자..." 하곤 했다.


다음날 점심. 또 레드와인 한 병...


그런데 역시 프랑스는 프랑스. 와인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것도 너무나 싸다! 물론 여기도 비싼 건 엄청 비싸다. 그래도 4유로(한화 약 5000원보다 조금 더?)만 돼도 괜찮은 와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거기다 레드와인이 질리면 화이트 와인으로, 화이트가 물리면 로제로, 그러다 다시 레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이곳. 우리에겐 지상낙원.


집 앞에 있는 마트에도 따로 와인코너가 있고, 흔히 '아랍 마트(주로 아랍계 사람들이 운영한다고 해서 그렇게들 부른다. 새벽에도 문을 열고 있어 말하자면 프랑스의 편의점 같은 곳이라고 할까? 근데 보기에는 일반 동네 구멍가게다)'라 불리는 작은 가게에도 와인이 수십 병씩 깔려 있다. 


솔직히 나는 와인이라고 특별히 더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와인이 주류인 주류이니 즐길 수밖에. 그리고 그녀는 와인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그리고 빠져 들 수밖에!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 보니 술을 마시는 날도 일주일에 하루에서, 이틀, 그러다 6일로 늘어나고 말았다. 일주일에 비워내는 와인병이 4~5병에 달한다. 일주일에 20유로 정도, 한 달이면 80~100유로... 지니계수를 따져 보면 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 무시할 거다... 어쩌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면 하룻밤에 3~4병, 많으면 5병까지 해치우고 만다. 거의 일주일치를...!! 물론 다른 사람들과 마시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는 술에 강한 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내 고주망태가 된다. 술에 취한 그녀는 처음에는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그러다 갑자기 라면을 찾으며 본인이 끓이고 있다. 평소엔 라면 먹자고 하면 그렇게 튕기는데!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말없이 연신 하품을 하다 "나 좀 누워 있을게..." 하며 소파로 터덜 눕는다.


와인만 있을쏘냐! 맥주도 있다!


나 역시 불편한 속을 부여잡고 괜찮은 척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집에 도착하면 이내 침대에 쓰러진다. 그런데도 속이 편해지지 않는다 싶으면 스스로 조용히 처리하고 온다. 그녀는 옆에 널브러지곤 "어우! 후우... 힘들다!"를 연신 내뱉고 있다.


너무나 잠을 자고 싶으나 불편한 속 때문에 쉽게 잠에 이르지 못하고 잠든 듯 아닌 듯 몽롱한 상태서 우린 다짐한다. "우리 정말 한동안 술 자제하자. 우리 알콜 의존증 같아"하고. 정말 그때만큼은 정말 그러고 싶고 그럴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다음날 우린 마트에서 "할인할 때 미리 사두는 거지! 오늘 마시지는 말자!"라며 그날 밤에 마실 와인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그러곤 지금처럼 알딸딸한 상태에서 브런치 글을 쓴다... 어떤 면에서 프랑스에 온 게 참 좋으면서도 정말 오면 안 될 곳에 온 거 같기도 하다...


해산물엔 역시 화이트 와인이라며 또 한 병!


매거진의 이전글 응, 참지 않고 솔직했던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