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마시죠
우리 부부는 술을 즐긴다. 나는 술을 별로 못 마시지만 한두 잔 식사와 함께, 혹은 식사 후 개운하게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남편은 꽤 잘 마시며 그냥 언제든(?) 좋아한다. (이전 글에서 자기도 술 못 마시는 척 하고 있던데...) 프랑스에 유학 와서 다양한 와인을 맛보는 것은 서로 말해서 정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자연스레 마음속에 품고 있던 하나의 퀘스트와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대형 마트에서 3만원대에 판매하는 와인이 여기서는 7~8유로대다. 한국에서도 마트에서 와인 장터같은 할인행사를 진행하면 5천원~만원 와인도 구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그래봤자 만원, 만원 이상의 것에 손이 갔다.
프랑스에서는 마트에 가면 4~5유로대 와인 종류도 정말 많다. 심지어 맛도 좋다(물론 맛없는 것도 있다. 음, 맛없다기보단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것!). 프랑스에 와서 맛있는 빵을 먹고 질 좋은 버터를 먹는 것처럼, 다양하고 저렴한 와인을 마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처음 4유로대 와인에서 시작을 해서, 작년 여름 7유로대 와인을 사마시기에 이르렀다.
첫번째 문제는, 술값이 우리 식비에서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우린 대부분의 식사를 집에서 한다. 외식비, 문구류 같은 다른 물가에 비해 식재료가 한국 대비 조금 저렴한 편인데, 그럼에도 지출에 식비가 큰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문제는 와인이었다. 7유로대 와인을 일주일에 3병 먹으면 21유로. 그리고 사실은 더 먹으니까^_^... 유학 예산 빠듯하다고 알바를 시작한 마당에 이건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지난 가을 우리는 술값을 줄여보기로 했다.
두번째로, 술을 마시는 양이 점점 늘어갔다.
맥주 500cc를 다 못 마셔서 울렁거린 적도 있고, 첫 직장의 신입사원 환영회 때는 술 때문에 응급실에 갔다. 그렇게 '양'으로는 잘 못마시지만 식사에 곁들이는 술, 식사 후 개운하게 마시는 술을 무척 좋아한다. 몇 년 전부터 야금야금 늘어난 뱃살도 저녁에 한 캔씩 따던 맥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와인은 도수가 높은 편이니까 내게 한 잔이면 족했고 많이 마시면 3잔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 잔을 다 마셔갈 때 쯤이면 남편이 2잔을 마시니까 나도 한 잔을 더 따르고, 내가 한 잔 더 마시니까 남편도 잔을 한 번 더 채우고, 그러면 나도 괜히 한 잔 더 마시고, 결국 나는 술기운이 확 올라서 저녁을 먹고는 그냥 침대로 직진하는 것이다. 저녁 먹고도 공부할 수도 있고 영화도 볼 수 있고 글을 쓸 수도 있는데, 시간을 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건 괜히 술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일 수도 있는데, 혹시 저녁마다 와인을 마시는 게 습관이 되어서 와인이 없으면 내가 잠을 설치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다. 잠에 조금 예민한 편이긴 하지만 잠 드는 것에는 문제가 별로 없는데, 가끔 새벽 5시가 되도록 잠에 못 드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생각해보면 와인을 안 마신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은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신 때도 있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머리가 팽팽 돌아 그런 때도 있다. 내가 정말 수면을 위해 와인에 의존할 정도로 많이 마신 건 아니니까, 이건 결코 사실이 아닐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그럴 수도 있다'는 이 의심 자체로, 갑자기 와인에 덜컥 겁이 났다.
시험이 있기 전엔 서로 금주도 했다. 떠들고 노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술 마시고 공부하는 게 공부 효율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다가도 이렇게 생각을 했다. '술은 식문화의 일부잖아. 음식과 조화를 이루어 얼마나 더 맛있어지는데. 괜히 금할 필요가 있나?' 영화를 봐도 정말이지 와인이든 위스키든 맥주든 술이 안 나오는 영화가 없다. 아, 술은 세계인의 일상이라구. 우리 삶의 일부야.
그냥 마시자.
그래서 우리는 구매하는 와인 가격대를 4-5유로 선으로 다시 낮추고, 일주일에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을 2-3일 확보하며(ㅋㅋㅋ) 와인과 함께 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리고 술기운을 각자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을 때까지만 마시려고 한다. 정말... 고기 먹을 때 레드와인 한 모금 하면 더더 맛있고, 생선이나 새우 먹다가 화이트와인 마시면 너무너무 상큼하고 개운하고, 김치찌개나 불고기 같은 양념 진한 음식과 레드와인도 진짜 잘어울리고, 그렇다구...
덧붙여서, 그냥 와인 좋아하는 것을 받아들이고(...ㅎ) 이것으로 영상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프랑스 유학하는 동안,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보자는 것이 나의 작은 다짐인데, 글을 꾸준히 쓰는 것 다음으로 올해엔 영상도 하려고 한다. 무얼 어떻게 해볼까 고민하다 일단 꾸준히 할 수 있고 훗날에도 이곳에서의 시간을 돌이켜 볼 수 있을 브이로그로 시작했다. 와인을 사고 마시고 후기를 남기는 와인 일기를 매번 포함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와인 맛을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문득 와인 공부하고 싶어진다. 하하
* 브이로그.. 우리 요렇게 돌아다니고 먹고 마시고 살아요 :-)
여보. 오늘 저녁은 소고기(=레드와인)야, 저녁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