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 - 밥
거의 3개월 가까이 나도 남편도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 함께 매거진을 꾸리면서 서로 일주일에 한 편은 글을 쓰도록 북돋우어 주곤 했었는데, 3월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지면서 둘 다 이를 미뤄두었다. 남편은 어학 시험과의 사투를 벌였고, 나는 학교 지원을 위해 급작스레 관련 서적들을 들춰보며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공부 한참 쉬다가 이제 석사 공부를 하겠다는데, 앞으로 배워야 할 학생에게 웬 연구계획서를 5장씩 써내라는 건지. 어떤 연구를 할까, 관심분야로부터 차곡차곡 생각을 넓혀가며 한국에서 가져왔던 책 몇 권을 읽고 도서관에 있는 원서도 훑어보았다. 이런 과정이 재미있었고 정작 몸이 바쁘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엇이든 정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이를 프랑스어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조여왔다. 어학원에 갔다가 나머지 시간에 할 일을 하거나 조금 빈둥대는, 여느 때와 같은 유학생의 일상이지만 어느 날은 더 예민하고, 어느 날엔 더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느 날엔 마음이 한없이 풀어지는 그런 나날을 보냈다.
우리 부부의 일상도 똑같이 흘러갔다. 서로 참 좋고 모든 게 사랑스러운 날이 있고, 한 사람의 예민함이 상대방에게 날카롭게 가닿는 날이 있었고, 뾰로통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을 보내는 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이에 꼭 일정하게 흐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밥'에 대한 얘기다.
부부는 매일의 삶을 공유하는 사이고 먹는 것이란 삶을 영위하게 하는 너무나 기본적인 요소니까, 부부가 밥 얘기를 하는 건 당연한 건데. 우리 사이에 먹는 이야기는 정말 '이야기'가 된다. 일단 먹는 것을 좋아하는 두 인물이 있다. 그런데 한 명은 고기와 기름에 지지고 튀긴 것과 인스턴트와 '고봉밥'을 좋아하고, 한 명은 채소와 구운 것과 건강한 음식과 '쌀밥은 조금만'을 선호한다. 배경은 프랑스. 한식이 흔한 음식이 아닌 반면 다채로운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 한정된 예산. 그래서 우린 "오늘 저녁은 뭐 먹을래?"로 밀당을 한다.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다, 확 당기다, 확 밀리다 유치하게 삐친다.
이를테면, 불과 일주일 전에 카레를 먹은 것 같은데(한 냄비 가득 끓여 이틀 동안 먹음) 또 카레를 먹자고 할 때, 닭갈비 닭볶음탕 제육 소불고기를 연달아 원할 때, 이미 그와 함께 밥을 국그릇에 담아 먹었는데 게다가 밥을 볶아먹자고 할 때 - 약간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그만큼 자주 듣거나 보는 일이라 인이 박여 그렇다 ㅎ_ㅎ... - 나는 그만 그 메뉴에 질려버린다. 나도 다 좋아하긴 하는데, 적당히 드문드문 먹고 싶단 말이다... 잘 자고 일어난 어느 주말 아침,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뭐 먹을까?" 질문을 던지면, 남편은 진심을 섞은 장난으로(아니면 장난에 진심을 온전히 실어 담아) 카레, 닭볶음탕, 닭갈비, 삼겹살을 연달아 퍼붓는다. 그러면 난 모든 걸 거부하고 계란을 삶아 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하고, 메뉴 협상이 끝내 타결되지 않으면 둘 중 하나가 살짝 토라지고 마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브 앤 테이크 형식이 약간 자리를 잡고 있다. 즉 한 번 상대방이 원하는 카레를 해 먹었으니, 한 번은 내가 원하는 된장찌개를 해 먹는 것. 이렇게 활자로, 눈으로 확인하니 참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의 유학 생활에 있어 하루를 유쾌하게 시작하고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것에 너무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단 말이다.(덧붙여서 식사에 곁들이는 술이...) 이건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우리 사이에 쭉 흐를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매거진 위에서도, 매거진을 덮어놓고서도. 오늘 우리가 어떤 스트레스에 시달렸는지, 어떤 한심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든지 간에 - 오늘 저녁은 뭐 먹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