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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민스러운 영어 표현 -9-

원어민 감별법 (부가의문문이란?)

by 마잌

진짜 오랜만에 영어 관련 글을 쓰는 것 같다. 사실 영어 관련 글이 영화 관련 글에 비해 쓰는데 시간이 훨씬 덜 들어서 각 잡고 쓰면 금방 뚝딱 하나 나오는 편인데, 왠지 항상 영화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그만큼 영화를 좋아하나 보다. 어쨌든 오늘은 약간 기출변형(?) 느낌으로 원어민스럽게 말하는 방법이나 표현 소개가 아니라 원어민을 가장 확실하게 감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미국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매년 여름 한국에 들어와 대치동 논술학원을 다니면서 다져진 토대에 벌써 8년 가까이 한국 대기업에서 보고서를 써온 짬이 쌓이다 보니, 맘먹고 토종 한국인 코스프레를 하면 사실 아무도 미국인인지 눈치를 못 채는 경우가 많다. 온갖 인터넷 밈과 신조어들도 모두 섭렵하고 있고, 사자성어와 한자도 잘 쓰는 편이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미국인스러운 부분이 몇 개 있다.


1. 부가의문문에 대답하기


일단 나도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좀 검색을 해봤는데, 부가의문문이란 뭔가 “아님”을 확인하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밥 아직 안 먹었지?” 같은 질문을 의미하는데, 이어서 “그렇지?” 같은 추가 확인이 더 해질 수도 있다. 영어로는 “You didn’t eat yet” 다음에 “did you?” 혹은 ”right?” 같은 게 따라오는?


이게 진짜 골 때리는 게 한국어로는 “, 안 먹었어”로 대답하는 게 가능한데, 영어로는 답변할 때 긍정이든 부정이든 무조건 한쪽으로 통일해야 된다. 무조건 “No(부정) + I didn’t (부정)”, 혹은 “Yes (긍정) + I did (긍정)으로만 대답이 가능하고, 만약 미국인과 대화 시에 한국어 하듯이 대답하면 바로 상대방이 나를 영어가 서툰 이민 1세나 유학생이라 생각하고 말도 한결 천천히 하고 쉬운 단어나 표현을 써주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 현지화 패치가 아주 잘 되어 있어서 영어 단어 발음으로 미국인 티가 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되는데 -예를 들어 피자를 핏짜로 발음하는 것 같은 초보적인 단계는 졸업한 지 오래다- 유독 이 부가의문문은 분명히 한국인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알면서도 답변이 부정+부정 혹은 긍정+긍정 조합으로 뇌에서 필터링 없이 바로 튀어나온다. 뭐 딱히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주위에 나 말고 다른 한국 생활 오래 한 검머외들도 대부분 고치지 못한 걸 보면, 이만한 원어민/교포 감별법이 없는 것 같긴 하다.


2. 신호등 건널 때


내가 아직도 고치지 못한 또 하나의 미국인스러운 표현은 바로 신호등의 보행신호 색깔이다. 아니 근데 난 왜 누가 봐도 초록색인 보행신호를 “파란불”이라고 부르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영어로는 분명히 “green light”이고, 요샌 한국에서도 그린라이트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종종 회사 동료들과 길을 건널 때 내가 “오 초록불이에요, 빨리 건너죠” 이런 말을 하면 동료들이 “마잌 확실히 미국 사람 맞네요” 하고 웃곤 한다.

초록불을 초록불이라 부르지 못하다니.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횡단보도 이야기를 하니까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매번 길을 건널 때마다 시각장애인 분들을 위한 음성 안내 버튼을 눌러대던 시절도 떠오르는데, 미국은 기본적으로 신호등 버튼을 눌러야 신호가 바뀌는 구조라 그렇다. 나중에 명동이나 광화문 같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곳에서 신호등 근처를 지켜보면 아마도 많은 외국인들이 그 시각장애인 분들을 위한 버튼을 열심히 누르고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신호등 버튼에 이어서 나는 이제 내 주위의 누가 재채기를 했을 때 “Bless you!”는 외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원래 영미권에서는 누가 재채기를 하면 생판 모르는 남이라도 “Bless you”라고 해주는 문화가 있는데, 예전엔 재채기를 하면 영혼이 몸을 떠난다는 미신이 있었어서 재채기 한 사람의 영혼이 몸에 붙어있으라고 일종의 주문처럼 외쳐줬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첫 직장 다닐 때만 해도 누가 재채기를 하면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곤 했었는데, 어디선가 미국에서 잠깐 살다 온 애들이 오히려 영어 단어 발음도 더 과하게 굴리고 “bless you” 같은 표현을 남발해서 꼴불견이란 이야기를 듣고나서부턴 의식적으로 참기 시작해서 이제는 아주 잘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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