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거의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
오늘날 시각으로는 이해가 힘들겠지만 메이저리그 초창기만 해도 야구는 교양 없는 건달들의 운동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제 아무리 메이저리거라도 고급 호텔에 들어가기 힘들었고 들어간다 한들 다른 손님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자리를 배치 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오늘날 메이저리거는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 그 자체다.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관중과 미디어의 주목 속에 경기를 펼치며 자신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은 팬들로부터 여기저기서 사인을 요청받는다. 게다가 전용기의 1등석을 이용하고 특급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단 한경기만 뛰어도 평생 의료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무엇보다 로스터에 43일 이상 등록되면 사망할 때까지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그 금액은 45세부터 수령 시 연 6만 달러가 넘고 60세부터 수령 시에는 연 20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
이러한 부와 명예를 쫓아 전 세계의 날고 기는 야구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를 향해 몰려든다. 실제로 최근 메이저리거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약 30%는 미국이 아닌 20여 개국에서 모인 외국인 선수들로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선수들이 가장 많고 네덜란드, 일본, 한국 등 유럽과 아시아 선수들도 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기프트 은고에페와 같은 아프리카 선수도 등장했다. 제한된 자리를 놓고 전 세계 야구 유망주들이 몰리다 보니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들 대부분은 메이저리그로 직접 향하는 대신 보유한 기량에 따라 루키리그부터 트리플A까지 여섯 단계로 구성된 마이너리그 중 한 단계에 배치되는데 상위 단계로 올라갈수록 더 강하고 더 빠르고 더 똑똑한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살아남고 살아남고 또 살아남으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싸구려 호텔과 음식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때로는 15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곧장 경기를 펼쳐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도 맞서야 한다. 이렇게 힘든 마이너리그에서 기량을 인정받은 10%정도의 선수들만이 끔찍이도 멀었던 메이저리그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
험난한 과정 끝에 입성한 메이저리그 생활이 마냥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선배들을 위해 허드렛일을 하고 ‘루키 헤이징(Rookie hazing)’으로 불리며 선배들이 지정한 우스꽝스런 복장을 입는 일종의 ‘새내기 신고식’도 치러야 한다. 또한 메이저리그라는 무대에 서 있다는 자체만으로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곳이 예상보다 만만치 않은 곳이라는 생각에 자꾸만 걱정이 들게 마련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기에게 안타를 펑펑 허용하던 투수들은 여전히 마이너리그에 남아있거나 고향으로 돌아간 반면 삼진을 쏙쏙 뽑아내던 투수들만이 이곳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조금만 뒤처지면 언제 어디서든 무시무시한 경쟁자가 자신의 자리를 밀고 들어오겠다는 초조함까지 느끼게 된다.
날고기는 선수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곳에 선수들이 머무는 시간은 평균 6년으로 놀란 라이언처럼 27년간 활약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래리 욘트처럼 1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돌아가며 화려한 나들이를 마치는 선수도 있다. 그리고 알 칼라인, 치퍼 존스처럼 데뷔 후 은퇴까지 오랜 시간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원 클럽 맨(One-club man)들이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여러 팀을 옮겨 다니고 일부 선수들은 자신이 입어본 유니폼이 몇 벌인지 헷갈릴 정도가 된다. 이렇게 유랑극단원처럼 많은 팀을 떠도는 선수를 저니맨(Journey man)이라고 부른다. 저니맨은 팀의 주축이 될 만한 실력은 가지지 못했으나 원하는 팀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꿔줄 수 있는 기량을 갖추었기에 영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불행한 선수라고만 볼 수는 없으며 대표적인 저니맨으로는 무려 13개 팀에 몸을 담은 옥타비오 도텔, 에드윈 잭슨이 꼽힌다. 이처럼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언제 마이너리그로 떨어지거나 다른 팀으로 옮겨야 할지 모르는 치열한 경쟁과 긴장의 연속 속에 살다 보니 메이저리거들 중에는 별의별 징크스를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러한 징크스는 자신에게 익숙한 행동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취하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노마 가르시아파라는 오른쪽과 왼쪽 장갑을 번갈아가며 조이고 배트를 돌리며 왼쪽과 오른쪽 발끝을 찍는 요란한 타격 준비 동작을 습관적으로 취했고, 웨이드 보그스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수비 훈련 시 150개의 땅볼을 처리하고 경기 전에는 닭고기를 먹었으며 유태인이 아니면서도 타격 전 히브리어로 ‘삶’을 의미하는 ‘Chai’라는 단어를 쓰는 등 다양한 징크스로 뭉친 선수였다.
메이저리거들은 일반인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인 20대 중후반에 전성기를 보낸 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리고 굵어진 허리통으로 배트를 시원하게 돌리지 못하고 베이스를 달리는 것이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노장이 되면 부진한 경기력이 일시적인 슬럼프인지 아니면 영구적으로 기량이 저하된 것인지 본인 스스로도 헷갈려한다. 고목나무에 피는 꽃처럼 가끔은 전성기 시절의 기량이 튀어 나오지만 분명 한 방 날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실투를 앞에 두고 헛스윙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이제 낚시질을 다닐 때가 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주변에서도 ‘이제는’이라는 말이 슬슬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과 다름없는 그라운드를 떠나는 것은 보통 미련이 남는 일이 아니다. 정상에서 박수를 받으며 은퇴하든 구질구질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초라하게 은퇴하든 은퇴를 결정하는 것은 선수 본인의 자유다. 그리고 누구나 세월 앞에 장사는 없기에 언젠가는 담담하게 은퇴를 결정한다. 은퇴 후 이들은 지도자, 구단 프런트, 해설가 등으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하고 일부는 사업가 또는 선수 생활 동안 소홀했던 가정에 헌신하며 야구와 거리를 둔 삶을 살아간다. 매우 드문 경우로 라이언 샌버그, 트로이 퍼시발과 같이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은퇴를 번복하며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활약하는 선수들도 있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라는 화려한 무대에 2만 여명의 선수들이 올랐고 그 중 1%에 해당하는 230여명만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메이저리거가 되고 그 무대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기까지의 치열함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왜 명예의 전당이 ‘야구의 신’에게만 허락된 곳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