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현 Feb 16. 2024

건강하세요.

어제는 면접을 봤다. 서대문우체국의 기간제 우정실무원을 뽑는 자리였다. 근무시간이 주 5일 오전 4시부터 8시였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새벽시간에 일을 하고 나와도 하루가 통째로 비어있는 느낌이 들 것 같았고 회사에 다닐 때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는 게 나에겐 맞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면접 관련 연락을 받고 서대문우체국 3층 지원과에 올라갔다. 나 포함 면접자는 세 명의 남성이었다. 한 분은 이미 대기 중이었고 다른 분은 나와 동시에 지원과에 들어갔다. 응시번호 001은 검은색 패딩을 입은 중년으로 왠지 가정이 있는 가장일 것 같았고 까무잡잡한 피부와 단련된 육체에서 몸을 쓰는 일을 오래 했을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응시번호 002는 이 일자리에 잘 어울리지 않는 네이비 정장 차림에 갈색 염색 머리를 투블럭으로 단정하게 자른 약간 사업가 스타일의 남성 분이었다. 나는 코르덴 바지에 헐렁한 셔츠, 워크웨어를 걸치고 갔다. 우리 셋은 10분 정도 대기했는데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나도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괜한 일인 것 같아 그만두었다. 


검은색 패딩을 입은 분부터 면접장으로 갔다. 대기 장소가 사무실 한 쪽 구석이라 우체국 직원들이 일하는게 보였다. 프린터가 고장나 거기에 관한 대화들을 나누는데 여러 연차의 직원들이 제법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것 나쁘지 않을지도라는 생각을 했다. 네이비 정장인 분은 나와 한번 눈이 마주쳤는데 민망했는지 이후부터는 뒤로 고개를 돌려 프린터 고치는 걸 계속 봤다. 첫 번째 분은 5분만에 면접이 끝났고 네이비 정장 분은 10분정도 소요되었다. 마지막이 나였다.


면접장에는 두 분이 계셨고 두 분다 여성분이었다. 두 분 다 굉장히 친절했다. 지원동기나 우체국 일에 관해 아는 바, 현재 내 상황 등을 물어보셨고 솔직히 답했다. 글을 열심히 써보려는 중인데 생계 유지할 일이 필요하고, 육체노동도 좋아하고,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하지만 오래 일할 사람을 찾는다고 강조했고 내가 그러지 않을 것 같아보였는지 재차 물어보셨다. 출퇴근을 오토바이로 하겠다고 하니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도 인상깊었다. 그게 구직자에 대한 걱정보다는 동생을 걱정하는 듯한 느낌이라 기분이 괜찮았다.


면접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는데 네이비 정장이신 분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계셨다. 우체국 직원 분이 아는 사이냐고 물어봐서 처음 뵀다고 말하고 조금 웃었다. 그런 김에 그 분께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말을 건네 서로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그 분은 1층에서 내리셨고 나는 오토바이를 세워놓은 지하층으로 나왔다. 모처럼 면접이라 약간 긴장도 됐고 점심도 안 먹은 터라 오토바이를 빨리 출발시켜 떠나려고 했다. 세워놓은 오토바이 앞에 서니 네이비 정장인 분이 1층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짧은 찰나에 그 분의 걸음걸이를 보았는데 발 뒤꿈치를 땅에 딛지 못하고 까치발로 걷고 계셨다. 


권우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까치발>을 보면 자녀가 까치발로 걷는 걸 본 엄마이자 감독이 내비치는 걱정이 담겨있다. 뇌성마비나 발달장애의 경우 까치발로 걷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분의 걸음걸이에서 어딘가 불편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자세한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장애로 연결시킬 수는 없었고, 그냥 그런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보았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그리고 멍청하게도 나는 오르막길에 세워놓는 오토바이를 출발시키려다가 순간적으로 무게를 감당 못 해 제자리에서 넘어졌다.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사람이 꽤 많은 우체국 출입구 쪽이라 엄청 쪽팔렸다. 겨우 오토바이를 세우고 나니 네이비 정장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괜찮으세요?  

아, 네. 오르막길이라 무거워가지구. 괜찮습니다.

네, 건강하세요.


그렇게 말하고 그분은 떠났다. 건강하세요 란 말이 귓가에 남았고 나도 오토바이를 출발시켜 집으로 돌아왔다.


면접 결과는 당일 발표되었고, 합격자는 응시번호 001번 중년의 남성분이었다. 떨어진 사람끼리 잘도 떠들었구나 싶었다. 정강이에는 넘어지면서 멍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우리를 그만둘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