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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Feb 11. 2024

우리는 우리를 그만둘 수 없다

이번 명절 주문 번호는 60번대가 마지막이었다. 내 기억에 주문이 가장 많았던 때는 200번대였고, 꽤 오래전이다. 주문은 명절마다 차츰 줄었다. 이제 명절에 떡을 주문하는 사람은 유난히 떡을 좋아하거나 아직도 차례에 떡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작은 고통에 시달리며 떡을 주문하는 사람들뿐이다.


집에 도착한 게 새벽이어서 아침 아홉 시에 떡집에 내려갔다. 부모님은 밤을 새워 떡을 만들어놓았다. 내 역할은 떡을 찾으러 오면 확인 후 떡을 내주고, 시간에 맞춰 배달해야 할 떡을 삼촌에게 전달하고, 소매로 떡을 사러 오는 사람에게 떡을 파는 일이다. 부모님은 싹싹하게 손님들한테 인사하고 친절하게 떡을 많이 팔라고 한다.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싶어서 열심히 했으나 부모님은 칭찬에 인색했다.


어떤 손님이 자기 떡은 따뜻해야 한다고 제일 마지막에 만들어서 가져 다 달라고 했다. 말도 안 된다고 엄마가 전화를 끊자마자 보드에 '주문받지 마'라고 쓰길래 다 같이 웃었다. 엄마랑 아빠는 한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지만 아빠는 면전에다 대고 싸우고 엄마는 뒤에서 욕한다. 난 엄마를 더 닮았다.


모든 주문이 끝나고 저녁 먹고 자려는데 누나의 친구 은정 누나가 인사한다고 찾아왔다. 누나가 일본에 있는 걸 알지만 그냥 부모님 뵈러 찾아왔단다. 은정 누나는  엄마가 자기 자식들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상에 딱 부합하는 사람이다. 밝고 명랑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잘하고 언제 만나도 기분 좋고 따뜻한 사람. 심지어 일찍 결혼해 초등학교 3학년 아이도 있다. 아쉽게도 누나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지. 현아. 결혼하면 꼭 연락해라. 은정 누나가 다정하게 말해줘서 뜨끔했다. 어릴 때 나도 은정 누나가 친누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걸 떠올렸다.


그러고 바로 잤다. 삼촌 내외와 사촌동생 때문에 엄마 아빠 내가 한 방에 잤다. 자다가 잠에서 깼을 때 문득 돌연히 부모님 중 누가 돌아가시는 상상을 했다. 왜냐하면 원래 아빠는 코를 골고 엄마는 이를 가는데 그날은 아무 소리도 안 들렸기 때문이었다. 슬펐지만 완전히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기분이 좋지도 않았다. 내일 눈을 뜨면 엄마가 밥을 하고 아빠는 전동안마기에 앉아있을 거라 믿어보면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부모님은 멀쩡히 깨어나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그래서 '아들은 계획이 뭐꼬'로 시작하는 결혼 이야기다. 지겨운 정도로 치면 100년 동안 매일 들었던 이야기 같다. 요즘은 협박까지 동원한다. 60대인 자신들이 언제 떠날지 모른다고 말한다. '요즘 아프면 그런 생각을 한데이. 내가 아들 결혼도 못 보고 죽을까 봐 불안해 죽겠는 거야.'  유일한 대항책은 눈 딱 감고 버티는 거다. 이리저리 화제를 돌려보려고 하는데 기가 막히게 다시 모든 이야기가 결혼으로 돌아온다.


그럴 줄 알고 점심에 약속을 잡았다. 서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친구를 만나 태화백화점을 지나서 우리가 다녔던 중앙중학교까지 걸었다. 친구는 초등학교 1학년때 만났고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중학교 때 삥 뜯기고 고등학교 때 선생들에게 처맞은 이야기들, 근황이 궁금한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 때부터 힙합을 듣고 음악을 만든다고 했는데 결국 앨범을 못 냈다. 아직도 피아노 사서 배우면서 꿈은 접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신용회복위원회에 취직했다. 첫 직장이다. 윤대통령 덕분에 빚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자기 회사는 망할 일 없고 앞으로 20년 회사 다니면서 마흔 되기 전에 앨범을 하나 내겠단다. 그건 멋있었는데 3년 안에 결혼을 하겠다고 해서 앞선 계획도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친구에겐 아직 여자친구도 없다.


각자 일로 바빠서 우린 금방 헤어졌고 나도 집에 돌아와 짐을 싸서 서울로 왔다. 엄마는 택시를 타는 큰길까지 나를 배웅해 줬고 엄마 눈을 보면 둘 다 눈물이 나니까 한번 포옹을 하고는 먼 곳을 보며 택시에 탔다. 기차에서는 부산을 잊어보려 했다. 서울에서 내가 할 일에 집중해 보기 위해... 기차에서 「키라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란 책을 읽었다. 텍스트가 많은데 재밌었고 거의 다 읽었다. 요즘 인격장애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상담선생님과의 대화에서 그런 분류들을 알게 되었고 나와 다른 인간들을 알고 싶었다. 키라가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은 마치 나와 같았고, 그게 두려워 거절을 못하는 것도 비슷해 보였다. 다른 점은 1,000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 부산 사진들을 스토리로 올렸다. 작년에 원주에서 알게 된 작가님이 DM으로 부산 사진 더 올려달라고 말했다. 그 말이 너무 귀중하게 보여 정확히 어떤 포인트가 마음에 들었냐고 꼬치꼬치 묻고 싶었는데 물론 묻지 않았다. 쿨하게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더 찍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본디 그런 인간이지. 나는 또 기대를 받으면 더 잘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망가지기도 한다. 몇 개 스토리를 더 올렸고 이번에는 나름 잘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아 칭찬받은 게 너무 오랜만이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와 한숨 자니 눈이 내렸다. 나는 근처 카페에 나와 책을 읽었다. 이 카페를 운영하는 커플은 다른 곳에서 셋이 카페를 운영했다. 거길 종종 갔고 커플이 다른 한 명을 비난하는 이야기를 훔쳐 들었다. 어느 날 보니 그 카페는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디자인이 괜찮은 포스터나 옷이 있었는데 그건 다 빠졌다. 커플 중 한 명이 만든 거였나 보다. 그러다 다른 곳에 새로 카페가 생겼길래 와봤더니 커플이 있었다. 공간은 전이 훨 나았는데 커플 얼굴이 너무 밝아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두 카페가 떨어져 있대 봤자 도보 10분 거리라 둘이 왕래는 하는지 어떤지 궁금했다. 어차피 물어볼 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난 안 물어볼 거기 때문에 셋이 어떻게 싸우고 헤어졌는지 지금 관계는 어떤지는 모를 테지만 혼자 그런 걸 상상하며 앉아 있다.


세상엔 이야기가 가득하고, 내가 뭐라도 보태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부산에서 만난 친구에게 힙합은 완전히 망했으니 아이돌 노래나 발라드를 만들어보라고 하니 그건 자기에게 당장 시를 쓰라는 거나 마찬가지고 다시 태어나라는 말이라고도 했다. 그래 우리는 우리를 사는 것이지. 우리는 우리를 그만둘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은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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