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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Feb 09. 2024

겁쟁이도 나다.

24년 1월에 3년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내가 만들고 운영하던 서점도 그만두었다. 별 대책이 있는 건 아니다. 살면서 한 번은 글을 열심히 써보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작년에 심리상담을 시작했는데 대략 15회 차 정도 진행하고 나니 나란 인간이 가진 약점이나 문제 패턴 같은 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됐다. 나에게는 공격성이 너무 부족해서 스스로를 방어할 정도도 안 되는 게 약점이고 그래서 부모나 직장 관계나 연인 관계에서도 상대방이 싫어할 것으로 예측되는, 갈등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일을 회피해 버리는 것이 문제의 패턴이다. 그렇게 남 좋은 일을 자처해서 많이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주고 마음이 편안하면 다행이지만 나는 또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쫌생이라서... 내가 해준 만큼 받지 못하면 불만이 쌓이고 그렇다. 그런 불편한 마음들이 내 마음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상담 선생님이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든 발산하는 것으로 불편하거나 어려운 마음이 있을 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마라, 그것 때문에 내가 기분이 상했다 같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물론 아직도 그건 잘 안된다. 문제를 인지하는 게 해결의 시작이라지만 안다고 해서 쉽게 바뀔 것이라면 애초에 큰 문제도 아니었을 거다. 나는 상담 선생님 앞에서만 울면서 이야기한다. 가끔은 찌질한 내 모습이 메타인지로 인식되는데 상담의 좋은 점은 그런 모습이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권장된다.)


선생님과 문제의 원인을 같이 찾아보고 있는데 역시 당연하게도 부모와의 관계가 등장한다. 상담을 통해 다르게 인지하게 된 생각 중 하나가 부모님에 대한 것이다. 부모님은 선하시고 나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주셨다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그건 일부분 맞다. 부모님은 30년째 작은 떡집을 운영하면서 육체노동을 하셨고 나를 위해 고생도 많이 하셨다. 대신 그것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을 가지게 됐다. 부모님이 바르게 잘 키워주셨는데 효도를 못 하고 있다, 부모님께 생활비 지원은커녕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삶, 결혼과 안정적인 수입을 이루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선생님의 가장 큰 조언은 내가 인식하고 있는 어떤 문제나 생각을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아요? 라고 계속 질문해 주시는 것인데) 부모님은 어린 나를 지나치게 통제했고 겁을 먹게 만드는 존재였다.


컴퓨터 게임을 늦게까지 하다 걸려서 망치로 컴퓨터가 부서진 기억, 하수도에 빠진 500원짜리 동전을 주우려다가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던 기억, 친구가 우리 집에서 돈을 훔쳐서 그걸 바보같이 몰랐다고 심하게 야단맞았던 기억 같은 게 마구 튀어나왔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것도 너무 많았다. 학교 앞에서 불량식품도 못 먹게 했으며 만화책도 못 빌려 봤고, 프라모델도 사서 조립하지 못했고 PC방에도 못 가게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려니 하고 참고 안 할 수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친구들과 무리를 이뤄 옆 동네에 꽃을 따러 갔고, 길을 잃어버려 자주 경찰서로 부모님이 호출되는 그런 아이였다. 호기심이 많았고 자유분방했고, 나이가 먹을수록 더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다 몰래 했다. 부모님이 싫어할 만한 일이면 숨기고 뒤에서 했다. 안 걸리면 그만인 것으로. 그 패턴이 지금까지도 내게 고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당당하게 말하고 할 수는 없었나. 난 그때나 지금이나 겁쟁이인 것 같다. 그래서 말을 못 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가 자란 곳이 부산이라 더더욱. 부산에서는 그런 남성은 쓸모가 없는 남성이라고 교육받는다) 난 누구한테 맞기도 싫고 소리를 빽 지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화를 내는 모든 사람이 싫다. 그들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마음속 깊이 담아둔다. 나를 통제하거나 권위로 가두려는 것도 너무 싫다. (저항을 잘 못하니 아예 피해 다닌다) 내가 많은 수의 남성과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특히 어른인 남성에게 불편함과 긴장감을 느끼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였다. (내가 특별히 여성을 좋아하는 게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여성들과 말하는 게 훨씬 편하고, 남자인 친구들도 마초와는 거리가 먼, 남성 세계의 서열경쟁에서는 탈락에 가까운 사람들을 좋아한다.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이 좋은 것이다.


솔직히 이 세계에서 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런 쫄보 성향은 불리하기 그지없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기 때문에 자신만만한 사람은 어디서나 주목을 받는다. 그 자신감의 실체가 없더라도 그렇다. 오히려 쫄보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마저 부끄러워한다. 남들이 대단한 거라고 말해도 믿지 못하고, 혹시 싫어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 사람에게 공격당하지 않을까 같은 것을 머릿속에 그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은 이런 마음이 조금은 이해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느껴진다는 거다. 특히 내가 서점을 운영하면서 세상 참 살만한 곳이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겁쟁이들이 만든 영상도 책도 공간도 커뮤니티도 많다. 그런 걸 좋아해 주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참 반갑다. 아 꿋꿋이 잘 살아왔구나, 이렇게 자기의 영역을 넓혀왔구나 싶어서다. 사실은 나도 그런 겁쟁이들의 연대를 위해 소설을 쓰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작은 용기라도 뭉치면 커진다. 그러면 위대한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먼저 쫄보 중에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뭐든 함께할 쫄보들을 모으고 싶다. 지난달에 회사를 퇴사하고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들이 그런 것이다. 우리 어떻게 연결되지. 다 숨어 있을 텐데. 여러 계획이 있지만 천천히 해나가려 한다.


암튼 첫 글이라 그런지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그리고 너무 희망차게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은 설 명절을 맞아 부모님 댁에 내려가며 썼다. 나는 이번 명절에도 집에 가서 부모님의 잔소리에 괴로워하며 별다른 저항도 못할 게 뻔하다. 조금이라도 더 소신 있게 나의 삶을 긍정하는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 보겠다. 실패한다면 최대한 빨리 도망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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