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함께 보낸다는 것"

<치매 생태계 세미나> 8회차 후기

by 이인현

치매 생태계 세미나 8회 차는 일본의 인지증 당사자이자 주간보호센터를 운영 중인 야마나카 시노부 대표와 함께 진행되었다.


초로기치매 당사자의 사회참여

- 야마나카 시노부 (인지증 당사자, 세컨드스토리 대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느 날부터 아들의 등교시간을 잊거나 휴무일에 등교시키기도 했다. 직장에서는 약속시간을 까먹고 동료의 이름을 잊어서 이상하다 생각했다. 병원에 갔지만 단지 '우울증이 아닌가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 초로기 치매를 다룬 드라마를 장남과 보고 있었는데, 장남이 뜻밖의 말을 했다. 주인공이 엄마 같다고. 그래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2019년 어머니와 진단결과를 들으러 갔다. 어머니는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본인이 대신 아프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엄마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말하며 울었다. 차남은 치매 소식을 듣더니 나에게 지지 말아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내 나이는 41살이었다. 나는 치매에 대한 우려보다는 지금까지의 컨디션 저하의 원인을 알게 되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후 인지증에 관한 정보를 찾으면서 배회, 남을 못 알아본다는 것, 아이들을 못 알아본다는 게 너무 슬펐고 우울증이 심해졌다. 장남은 나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했다. 차남은 자신이 직접 빨래를 하고 야구시합에 나가야 했다. 학교에서 온 문자답신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실패하는 자신이 미워 가족에게 화를 냈다. 사람들에게 증상을 알리는 것이 어려웠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내게 "뭐가 어려운가요?" "저를 잊지 마세요." 등의 말을 건넸다. 물론 그들이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긴 했지만 나는 결국 그들은 내 마음을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치매는 사람마다 진행도가 다르다. 언제 증상이 심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거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환경이다. 가족과 사회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 둘은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는 우울해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 안 이불속에 박혀 있었다. 아들들은 그런 나를 이불 밖으로 꺼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이불속으로 들어왔고 나를 안아주었다. 피부에 와닿는 아이들의 감촉을 느끼면서 오히려 내가 '더워 더워' 쑥스러워했고, 나는 이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서 내게 힘이 되었던 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증상을 알게 되고 여러 시설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시설을 다니다가 내가 직접 주간보호 시설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고 싶은 주간보호 시설을 내가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시설에 대한 경험은 전혀 없었지만 여러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곳을 해피데이케어센터라고 부르고 있다. 나도 진단을 받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해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해피라는 단어가 이름에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늘 행복을 생각해야 하고, 그러면 행복이 다가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 해피, 어땠어?' '내일 해피 갈 거야? '라는 대화를 들으면 가족 사이에서 계속해서 행복이 전해질 거라 생각했다.


일본에는 도요타 자동차 센터가 있다. 우리는 이 센터와 협약을 맺고 점포 내부 일을 도와드린다. 서로에게 필요함을 느끼는 존재가 된다. 센터 직원들은 '오늘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올 테니 일을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세차 작업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원칙은 모든 작업을 도요타 스태프와 함께하도록 한다. 스태프와 당사자가 때를 함께 보내면서 다른 작업들도 할 수 있게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마련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이것도 해주시지 않겠어요?' 이런 식으로 부탁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협력이 커진다.


때로는 귤 농장에서 수확을 돕는다. 귤도 먹으면서 수분 섭취도 할 수 있다. 농장에는 기념물을 만들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사진은 딸기 농장에서 한 봉사활동이다. 농장은 인지증 진단을 받은 사람은 혼자 가기 어려운 곳이니 우리 함께 가자! 생각했다. 여러분들의 일상 공간이 저희에게는 보물이다.


일본은 지진이 많기 때문에 대피타워가 있다. 한 분이 '내 다리로 거기에 갈 수 있을까?'라는 말을 하셔서 그러면 우리가 직접 가보자라고 했다. 모두가 함께 대피타워로 갔다. 시간은 정말 오래 걸렸지만 본인들 힘으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 사진은 방제 슬리퍼를 기부하면 기뻐하지 않을까 해서 함께 모여 기부를 한 사진이다.


슈퍼마켓에서 전시를 열고 인지증에 관해 알리는 활동도 했다.


일본 에자이도 함께 기업으로 참여했다. 행사의 취지가 때를 함께 보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농원에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달리기를 하며 당사자들이 서로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나 또한 인지증을 가졌지만 주간보호센터를 경영하는 대표이기도 하다. 내가 나의 증상과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네 가지 요소를 차로 비유하자면 타이어 하나씩으로 볼 수 있다. 네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차가 움직일 수 있다. 그건 본인 / 가족 / 전문직 / 지역사회다.


현장에 있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지증을 앓는 사람들을 듣는 것. 단순히 목소리만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액션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 듣기 뿐 아니라 듣기의 요령이 중요한 것이다. 마음을 전달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네/아니오로 끝나지 않도록 질문하는 것. 가장 어려운 건 답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본인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린다. 답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니면 종이에 직접 쓰게 한다.

마음은 언어 외적인 것으로도, 미소, 표정, 행동의 표현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여러분께서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인지증을 앓고 계신 분들의 마음을 잘 청취하고 있는가? 그 목소리는 본인 혹은 당사자의 목소리가 맞나?

질문할 필요가 있다.


불안한 날들은 분명 있다. 그때 장남이 '무슨 생각하고 있어? 잊어버려도 상관없어. 지금 즐거우면 된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가족은 내가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준다. 사람은 나 혼자 살 수 없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동료들, 가족에게 힘을 받는다. 나 같은 마음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지증의 편견을 없애고자 여러 활동을 한다. 인지증을 가진 분들이 조금 더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어려운 건 타인의 도움을 받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나아갈 수 있는 부분을 깨달았다. 내가 느꼈던 불안감을 아이들이, 동료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피 센터에 오신 분들이 웃고 있다. 모든 분들이 웃진 않는다. 나도 그랬다. 그래도 이렇게 여러 가지를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무엇이든 웃을 일이 생겨난다. 나 또한 가족과 동료가 있어 행복하다.


나는 누구라도 혼자라고 느껴지지 않을 쉼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쉼터의 유형이 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곳, 돌아갈 곳이 있는 쉼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인지증 본인 워킹 그룹이라는 단체가 있다. 본인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희망과 존엄성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기본법 제정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인지증을 앓고 있는 우리가 먼저 희망선언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질의응답


Q. 인지증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게 어렵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A. 증상이 있었고 증상이 있는 채로 일을 하는 데는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휴대폰에 항상 스케줄과 타이밍, 알람 기능을 사용하고요. 알람에 코멘트를 써놓고요. 주간보호센터 전에 저는 휴대폰 영업사원이었고, 휴대전화를 잘 활용합니다.


Q. 기술이 인지증이 있는 사람에게 분명히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팁을 준다면?

A. 고령자분들에게는 스마트폰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음성을 활용한 기능을 적극 사용하도록 합니다.


Q. 센터에는 초로기 치매 당사자만 있는지 다양한 증상이 있는 분이 계신가요?

A. 초로기 인지증뿐 아니라 연령대도 폭넓고 경도인지장애부터 중증까지 다양한 분들이 있습니다. 경도인지장애만 할 수 있다 보통 많이 이야기하는데 중증이나 고도라고 하지 못한다 라는 옵션을 두지 않고 선택을 본인 몫으로 두려고 노력합니다. 밭일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참여하신 분들이 중도 인지 장애 분들인데 원래 본인이 밭일을 너무 하고 싶어서 이렇게도 연결되었던 것 같습니다. 증상에 따라서 이걸 못한다, 저희의 판단으로 제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차의 경우 위부터 아래까지 차를 닦는 공정 중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을 나눠서 함께 합니다. 휠체어를 타신 분께는 아래를 닦도록 하고, 닦는 게 어려운 분들은 먼지 체크를 해달라고 합니다. 각각의 다양한 업무가 있는 가운데 하나의 작업을 모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Q. 인지증 이후의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됩니다. 자식들에게는 어떤 성장이나 배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진단받은 후에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는데 저와의 관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족들과 덜 싸우게 됐다 이런 일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보낸 것과 똑같이 보냈고 그게 저에게는 기쁨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한 가지 아이들이 인지증 이후에는 싸웠을 때 마지막에 용서해 줍니다. 저는 기억이 흐릿한데 싸우지만 마지막에는 알았다고 아이들이 져줍니다. 인지증/치매라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이고 양해를 해준다고 말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관계성을 가져주는 게, 변화가 없는 게 저에게는 기쁨입니다.


Q. 치매 당사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돌봄 종사자나 지원가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A. 제 자신은 인지증 진단을 받았을 때 모두가 다 도와주시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이러한 점 서비스로 도와줄게, 이런 게 어렵지, 이런 전문가의 시선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마음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인지증이라는 진단 자체가 인정도 안 되었고 내적갈등을 겪고 있는 시기에는 그런 방식이 오히려 벽이 됩니다. 제가 가장 알고 싶었던 건 실제로 겪고 있는 치매당사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의 고통, 아픔을 나누고 싶었어요. 이게 희망으로 연결될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희망과 다른 사람의 희망, 그런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당사자가 모이는 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마루오 씨

마루오라고 합니다. 야마나카 시노부와는 인지증을 계기로 만나게 되었는데 저는 npo를 하고 있고 초기 인지증을 가진 분들의 보험이나 시설에 가지 않는 분들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함께 스포츠를 하고 음악활동을 하기도 하고 꽃밭에 구경을 가기도 합니다. 같이 활동해 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때를 함께 보내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게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서 이걸 합시다 이렇게 됩니다. 이렇게 한국분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말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Q. 당사자 모임을 진행하면서

- 당사자들끼리 모이는 자리라도 두려워서 나오기 어렵다.
- 당사자들이 모여도 서로가 더 불행하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 미술, 생산 활동 등도 하지만 이걸 통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계기들을 만나는 건 어렵다.
- 일본은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계기들이 많은 것 같은데, 야마나카상과 일본분들은 '당연하다'라고 여겨지는 지점들이 한국에는 없거나 부족하지 않을까?
라는 소감이 남았습니다.

A. 한국은 당사자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해주셨는데 일본도 10년 전에는 굉장히 보수적이었습니다. 당사자 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본인이 다시 듣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한 명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정보공유부터 시작하면서 활동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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