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현 Nov 02. 2020

해야 하는 것과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김려령

문학과 지성사


주인공인 현성과 부모님은 삼촌에게 사기를 당해 양지 화원이라는 비닐하우스에 살게 됩니다. 옆에는 비어 있는 비닐하우스들이 3채 더 있고요. 아버지는 삼촌을 찾으러 집을 나가고,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간 현성은 친한 친구가 없습니다. 


그러다 현성은 밀가루를 사러 가서 우연히 학교 친구 장우를 만납니다. 둘은 비닐하우스 한 곳을 탐험해보기로 결의하고 결국 빈 비닐하우스 한 곳을 아지트로 삼아요. 장우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같이 살게 된 새엄마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거든요. 이들은 이 빈 아지트에서 유튜브에 올릴 챌린지 영상을 찍습니다. 1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영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책에 등장하는 녀석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영상을 찍은 걸까요? 어린 시절에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요를 받죠. 그건 어른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의 강요에 따른 것이냐가 다를 뿐이겠죠.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도 대부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게 사람들에게 디폴트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녀석들이 신기하게 보일 것 같아요.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들로 우리 삶이 가득 차버릴 때가 많잖아요.


저도 어릴 때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릴 때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았고 하고 싶은 것들의 대부분은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거든요. 그중 가장 큰 건 나만의 아지트를 가지는 거였죠. 하지만 제가 살던 곳은 대도시의 주택가였고 아쉽게도 아지트로 삼을만한 공간, 그리고 그 아지트를 같이 지켜줄 친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 자취방을 사랑하게 된 건 그때 가지지 못한 아지트를 구현하기 위한 것 같아요. 심부름을 해야 할 때면 돈을 들고 슈퍼까지 전속력으로 뛰어가곤 했습니다. 심부름을 빨리 갔다 온 걸로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었죠. 심부름을 가서 과자 하나 몰래 사 먹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과자를 마음껏 사먹고 버스를 타고 동네를 혼자 떠나보는 상상을 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언제나 그때의 나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때의 내가 현성이나 장우 같은 친구를 만난다면 크게 기뻐할 것 같아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같이 하는 친구. 빈 아지트에서 비어있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친구. 가끔 심부름 값에서 몰래 과자를 사서 나눠먹는 친구. 책을 읽으면서 가슴 아픈 현실과 그걸 바라보는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의 마음에 서서히 물들어갔어요. 아마 결말에는 이런 마음이 더 커지겠지요.


출판사 서평단으로 책을 읽게 되어 결말 부분이 밝혀지지 않은 가제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리뷰를 완성하고 나면 결말을 있게 거예요.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도 깨닫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기도 합니다. 욕망과 금기와 감정의 흐름들로 세상의 본질을 보기도 하지요. 그때 이해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해봅니다. 부디 현성과 장우가 자신 앞에 주어진 시간을 멋지게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분명 그럴 거라고 확신하지만요.


매거진의 이전글 기대 없는 삶과 대화들, <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