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무라카미 하루키
김영사
102p
2020.10.16
13,500원
저는 하루키를 매우 좋아합니다만 최근에는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말이 왠지 관용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루키에 대한 명백한 불호를 가진 분들도 있어서 말하기가 꺼려집니다. 아마 한국에 번역된 하루키의 소설은 모두 읽었던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을 거로 생각해요. 지금이야 하루키만큼 좋아하는 소설가도 많지만 10대와 20대 초반에는 하루키의 소설이 저의 삶에 절대적이었죠.
반면에 하루키의 에세이는 많이 읽지 않았어요. 사실 하루키는 늘 비슷한 온도를 가진 담담한 인물(아마도 자기 자신과 닮은)을 주인공으로 하기 때문에 소설이나 에세이의 매력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담담한 소설 속 인물과 현실의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건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하루키의 인물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 책은 에세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상당히 소설적인 느낌이 납니다. 아버지에 대한 설명이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아버지와 있었던 일들의 상당수가 소설의 모티프가 됐기 때문입니다. 책의 한 대목을 읽으면 바로 어떤 소설들을 연결지어 떠올릴 수 있었는데요. 아버지가 전쟁 중 포로를 사살했다는 사실을 어린 하루키에게 말하는 장면은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포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버지가 했던 이야기가 아주 강렬한 기억을 하루키에게 심었고, 거기서 소설의 상상력들이 돋아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물론 하루키는 어떤 사건이든 깊게 침잠하지는 않아요. 무엇이든 단정적으로 판단하지도 않고요. 등단 이후 아버지와 어떻게 사이가 틀어졌는지가 궁금했는데 그 이야기는 아예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고 생략해버리고요. 하루키 소설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대부분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책에서 기대했던 아주 핵심적인 것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읽는 재미가 느껴지는 책입니다. 아쉬운 건 책의 볼륨이 작다는 거고 아마도 하루키를 좋아하셔야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라고 단서를 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과 별개로 책 속 삽화들과 책의 만듦새가 아주 이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