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토마스 베른하르트
문학과지성사
246p
2020.05.08
10,000원
책에 실려있는 10편의 소설 중 어느 한 문장을 떼내기가 어렵다. 10편의 소설이 모두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세계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한 것처럼 느껴진다.
모두 다른 이야기 같은데도 불편하고 지독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인물들은 언제나 대화에 실패하고 각종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어딘가를 벗어나 다른 곳에 가보려 하지만 그곳마저 끔찍하다는 걸 깨닫는다. 집요하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다른 인간이란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책을 덮고 나면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란 게 애초에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자기 관심사에 따라 하고 싶은 말을 떠드는 사람들뿐이고, 듣는 시늉을 할 뿐이며, 결국엔 서로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세계를 그리게 된다.
이 책에서 극단적으로 표현됐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몸담은 현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절반은 충분히 잔인하고, 무가치한 것들이지만 그래도 다른 절반에는 희망을 걸어보고, 나는 그렇게 살고 있구나 라는 걸 깨닫는다. 물론 세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절망이 압도적일 때가 많지만. 한번 맞닥뜨리고 나면 머릿속에서 지우기 어렵고, 죽기 전 다시 소환될 소설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