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현 Sep 22. 2020

장폴 뒤부아,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어떤 의미도 띠지 않는 날들에 관해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장폴 뒤부아

창비

294p


이 소설에는 크게 두 개의 축이 있다. 주인공인 ‘나’가 태어나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까지 이어지는 시간, 다른 하나는 ‘어떤 사건’ 이후로 시작된 교도소 생활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그의 삶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에는 단순하고 명료하게 이해되기를 요구받는 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법원의 판결. 살인미수죄 적용을 위해 사람을 죽일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밝히는 일. 그리고 보험료. 사고로 사망한 이가 생전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했는지, 건강한 삶을 누렸는지 등의 요소를 반영해 그의 보험료 액수를 측정하는 일. 또 배상 책임. 공사 중 추락으로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배상 책임이 있는지, 배상 책임이 없다면 어떻게든 빨리 공사를 끝내라고 독촉해야 하는 일.


소설 속 ‘나’는 버려진 개 누크와 함께하는 시간, 경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고요한 산장에서 인디언 삼촌의 삶을 나누는 위노나와의 시간을 떠올린다. 어쩌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수 있는 시간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변을 누고 할리 데이비슨을 좋아하며 머리카락을 자신의 신체처럼 생각해 자를 수 없던 패트릭의 삶. 덴마크 출신 목사 아버지와 예술극장을 운영하던 프랑스인 어머니. 이 소설은 그들의 시간과 삶을 어떻게든 명료하게 정의하려는 모든 시도에 반격하는, 그래서 소설의 존재 의의가 그것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그 메시지를 위해 끌어오는 풍성한 디테일과 이야기들. 현실의 복잡다단함을 축소하지 않으면서, 유머를 잃지 않고, 인물들을 아끼며, 그들을 위해 충분한 문장을 할애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소설. 소설 속 인물들과 작가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듯한 소설. 그래서 장폴 뒤부아의 다른 어떤 소설도 믿고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책,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입니다.


* 창비의 사전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작성하였습니다.


#장폴뒤부아 #창비세계문학 #모두가세상을똑같이살지는않아



매거진의 이전글 금융의 얼굴을 한 성매매, <레이디 크레딧>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