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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Jul 14. 2019

<미드소마>

매우 불친절한 공동체

미드 소마. 영어로는 미드 섬머. 매년 6월에 스웨덴에서 열리는 하지 축제이다. 하지, 곧 낮이 가장 긴 이 시기에 진행되는 축제가 이 영화의 주 배경인데 보통의 공포영화들이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하는데 반해 백주대낮이라니. 이 영화의 출발선 자체가 독특하다.


영화는 이 축제에서 벌어지는 의식(儀式)을 의식(意識)의 흐름대로 쫓아가며 진행이 된다. 부정적인 의미로 '의식의 흐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ceremony'를 뜻하는 의식(儀式)이 영화의 외적 줄기라면, '

consciousness'를 뜻하는 의식(意識)이 영화의 내적 줄기인 것이다.


주인공인 대니와 그의 남자 친구 크리스챤. 그리고 남자 친구의 친구들 조시, 마크, 펠레 이들은 논문 연구를 위해 하지제가 열리는 스웨덴으로 떠나게 된다. 스웨덴에서 뉴욕으로 유학을 온 펠레의 도움으로 말이다.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인 대니의 정신병력, 트라우마, 가족사 등이 밑밥으로 깔리면서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들이 스웨덴에 당도하면서 본격적인 의식의 축제 그 서막이 열리게 된다.



영화는 줄곧 환각 상태에 노출되어 있다. 크리스챤과 친구들은 대마초를 입에 달고 살며, 대니도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 자는 중독 환자에 가깝게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결국 감독이 의도한 대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있어 아주 용이하게 쓰인다.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이는 꿈 또는 어떤 환각상태에서 인물들이 마주하는 이미지들.  또한, 알 수 없는 단어로 외우는 주문들과 기괴한 멜로디의 음악들은 이러한 환각작용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영화 자체가 거대한 환각인 셈이다. 마치 관객들에게도 환각제를 투여하듯 오묘한 톤의 미장센이 아주 인상적인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곡성의 명대사가 아른거렸다.


 고놈은 그냥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자네 딸내미는 고것을 확 물어분 것이여


친절이란 미끼로 평범한 미국 대학생들을 축제로 끌어들인 그들. 헬싱글란드의 그 공동체. 알고 보면 매우 불친절한 공동체. 미지의 종교를 숭배하며 그들만의 언어로 만들어진 경전도 있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의식들에 참여하는 모습은 차라리 신석기시대의 샤머니즘에 가까운 듯하다. 오컬트를 표방하는 공포영화에서 종교적인 코드는 라면에 김치 같이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나, 이건 도대체 어느 나라 김치인지 그 맛이 낯설기 그지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도 그러했지만 자발적인 체험이 아닌, 강제적으로 문화체험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환경에 떨어진 등장인물들의 충격이 나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다.


어쨌든 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바쳐질 제물이 필요했고, 새로운 피의 수혈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끼를 문 대니의 친구들이 그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공동체와 제물. 어디서 많이 본듯한 설정이다. 감독의 전작인 <유전>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공동체는 파이몬을 숭배하는 집단이고 제물은 파이몬을 위해 희생된 주인공의 가족들이었으리라.


아리 에스터 감독은 <미드소마>를 통해 단순히 공포영화를 잘 만드는 장르영화감독이 아닌 본인의 색깔이 뚜렷한 작가라는 것을 과감히 보여주고 있는데, 더 넓어진 세계관과 더욱 짙어진 감독의 색깔이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데뷔작인 <유전> 이 거의 모든 장르영화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평단의 고른 지지를 얻어낸 것에 비하면 다소 갸우뚱하게 되는 결과물이다.


<미드소마> 는 불친절한 공동체가 등장하는 불친절한 영화다. 영화의 언어는 매우 축약되어 있어 쉽게 읽히지 않고, 산발된 이미지와 미장센으로 주제를 전달하려 하니 전반적으로 난해한 느낌이다. 내게 있어 <미드소마> 는 관람이 아닌 '체험' 이 된 영화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나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다음 작품이 엄청 기다려진다.

그가 또 어떤 "일생일대의 경험"을 줄 것인가.



ps: 생각보다 공포영화로서의 장르적 쾌감이 적은 건 매우 아쉬운 요소다.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 많이 나오길 바랬건만.. <어스> 나 <서스페리아> 보다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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